"금융사고 사전에 못 막은 책임 어디로?"'은행 때리기'만 급급하단 지적도…
  • ▲ 시중은행에 대한 징계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자신의 책임을 은행들에게 돌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 NewDaily DB
    ▲ 시중은행에 대한 징계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자신의 책임을 은행들에게 돌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 NewDaily DB

    은행의 수난이 계속되고 있다. 저축은행 부당 대출 건으로 지난 4월 중징계를 받은 김종준 하나은행장이 KT ENS 사기대출 연루와 관련 또 징계를 앞두고 있다.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역시 나란히 중징계를 통보받았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경우, 최고경영자는 징계의 화살을 피하게 됐지만 담당자의 징계는 불가피하게 됐다.

계속되는 은행권 징계에 대해 금융권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금융권에서 터지는 불미스러운 일과 관련, 금융당국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책임은 면피한 채, 모든 잘못을 금융사만의 책임인 것처럼 몰고 가고 있다는 비판이다.

◇ 4대 시중은행 모두 '징계의 칼날'

금융당국은 4대 시중은행 모두에 대해 칼날을 겨누고 있다. 임영록 회장·이건호 행장의 국민은행, 김종준 행장의 하나은행 외에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임직원도 줄징계가 예고된 것이다. 다만, 서진원 신한은행장과 이순우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금융당국의 칼날을 피해갔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내달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하나은행 종합검사와 KT ENS 관련 부실 대출 및 불완전판매에 대해 제재를 한다. 

금감원의 종합 검사 결과, KT ENS 대출 건은 김 행장에게 책임을 물을 만한 정황이 발견돼 적어도 주의적 경고 등 경징계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나은행은 KT의 소규모 자회사인 KT ENS의 협력업체에 1600억원이 넘는 돈을 빌려줬다가 사기를 당했다. 이 사기 사건으로 하나금융의 올해 1분기 순익이 1천92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1% 급감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4월 17일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김 행장이 당시 사장으로 있던 하나캐피탈의 저축은행 부당 지원과 관련해 문책 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내린 바 있다.

이후 금융당국은 김 행장의 제재 내역을 조기에 공개하면서 중징계에 따른 자진 사퇴를 우회적으로 압박했으나 김 행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달 김 행장이 KT ENS 건으로 또다시 징계를 받을 것으로 보임에 따라 최고경영자로선 내부 통제에 적지 않는 타격이 불가피하게 됐다. 금융사 최고경영자가 제재를 연달아 받고 자리를 유지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 또한 이달 말 제재심의위원회를 앞두고 문책 경고 수준의 중징계를 사전 통보받은 상태다. 김종준 행장의 향후 행보에 따라 이들도 같은 수준을 밟게 될 가능성이 있다.

4대 시중은행이 모두 제재를 받는 가운데 이순우 우리은행장과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제재 대상에서 빠졌다. 두 은행의 경우 문책은 관련 담당자 선에서 그칠 예정이다. 최고경영자들에게까지 불똥이 튀지 않는 셈이다.

신한은행은 불법 계좌 조회로 제재를 받는다. 금감원은 정치인 계좌 불법 조회 혐의와 관련해 2010년 4월부터 9월까지 신한은행 경영감사부와 검사부가 조회한 150만 건에 대한 전수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 내부 직원이 가족 계좌를 수백 건씩 무단 조회한 사실이 적발됐다.

우리은행은 양재동 복합물류개발 프로젝트인 '파이시티 사업' 신탁상품 판매 과정에서 기초 서류 미비 등이 적발돼 징계를 받는다. 상품을 파는 과정에서 일부 기초 서류가 미흡해 고객의 오해를 가져올 소지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 은행에만 책임 전가… 금융당국 책임은?

4대 은행 모두에 불어 닥치는 '징계의 칼바람'을 금융권은 의혹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금융사의 잘못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당국 스스로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은행 때리기'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금융당국은 먼저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조 원장은 "금융당국은 지금까지의 금융사고에 대해 제대로 예방하거나 대책을 내놓을 의지 없이 방관해 왔다"며 “지금 와서 제재 운운하며 칼을 빼드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오만한 자세"라고 꼬집었다.

금융위원회는 몸집 불리기에만 급급할 뿐, 금융사고 예방 및 대책 마련·피해자 구제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다는 게 조 원장의 일침이다.

그는 "금융위는 오로지 금융소비자보호보다는 자신의 산하기관만 늘리려는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며 "금융소비자과·금융소비자 기획단을 구성하고 있지만, 조직 규모만 늘었을 뿐 전문성도 없다"고 주장했다.

금융감독원에 대해서도 '복지부동의 조직'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민원을 제기해도 좀처럼 처리가 진행되지 않는다. 왜 빨리 처리하지 않느냐고 다시 민원을 넣으면 중복 민원으로 처리한다"며 "이 같은 복지부동 조직이 금융사고에 대한 대응책이나 예방책 등을 신속히 마련할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원장은 "두 기관은 기관장을 비롯, 관련 국장, 과장 등이 먼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며 "책임지는 모습을 금융사 제재와 동시에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월 '카드 사태' 당시, 거취 문제를 묻는 기자들에게 "지금은 책임을 따지기 보다는 사태 수습에 매달려야 할 때"라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