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뚫은 '해커 1호'… 승승장구하다가 주전산기 사태로 추락
  • ▲ ⓒ NewDaily DB
    ▲ ⓒ NewDaily DB

    '국내 해커 1호'로 유명세를 떨쳤던 김재열 KB금융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전무)가 사실상 해임됐다. 지난해 7월 KB금융지주의 최연소 임원으로 발탁된 지 약 1년 2개월 만이다.

KB금융은 지난달 29일 국민은행의 주전산기 교체 논란과 관련한 책임을 물어 김 전무에게 직무정지 3개월의 징계를 결정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12일 "국민은행의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며 김 전무에 대한 정직(停職) 처분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2년 계약으로 입사한 그의 정직 기간이 끝나면 7개월 가량의 임기가 남는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그를 고발해 e메일 압수수색까지 당한 상황에서 다시 복귀하긴 어렵다는 게 금융권의 시선이다. 사실상 해임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 고졸 컴퓨터 천재, 금융사 최연소 임원으로

IQ 140의 컴퓨터 천재로 알려진 김 전무는 고등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컴퓨터를 공부했다.
 
지난 1993년, 청와대와 금융권, 전산업계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 발생했다. 누군가 청와대 PC통신 아이디(ID)를 도용해 은행 전산망에 접속한 뒤 휴면계좌에 있는 예치금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에 덜미 잡힌 인물은 바로 당시 23살이던 김 전무였다. 김 전무는 6개월간 구치소에 수감돼 '유명세'를 치렀고, 그가 벌인 이 사건은 대한민국 최초의 해킹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구치소에서 풀려난 후엔 대우그룹에 입사했다. "고졸의 해킹 범죄자지만, 출중한 컴퓨터 실력을 인정받아 대기업 취직까지 됐다"는 이유로 그는 당시 젊은층의 전설처럼 회자됐다. 

이후 금융 컨설팅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1998년에는 기획예산처 민간계약직 사무관으로 특채 임용됐다. 2000년에는 국가채권 관리개혁 방안을 제안한 공로로 '신지식 기획예산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KB금융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8년 국민은행 연구소장으로 임명되면서다. 

당시 그를 연구소장으로 임명한 것은 매우 보기 드문 파격 인사였다. 그와 비슷한 연배의 국민은행 멤버들은 과장이나 차장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의 연구소장 자리는 박사 학위 소지자거나 경제계에 널리 알려진 명망가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오르기 어려운 자리다. 1988년 순천고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30대의 그가 은행의 연구소장을 맡았으니,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를 영입하기 위해 당시 국민은행장이었던 강정원 행장이 직접 나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그 후, 지난 2013년 7월엔 43세의 나이에 국내 최대 금융그룹의 정보기술(IT) 업무를 총괄하는 책임자로 파격 발탁됐다. 

당시 그는 정홍원 국무총리와의 인연을 소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커'인 그를 검거한 자도, 구치소에 갇혀 있던 그에게 "능력을 좋은 곳에 발휘하라"며 취업을 알선해준 자도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3과장(부장검사)이었던 정 총리라는 것이었다.

◇ 주전산기 교체 과정 보고서 조작… '천재의 몰락'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김 전무는 KB사태가 발발하면서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이 "국민은행의 주전산기 교체 관련 지주사인 KB금융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며 금감원에 '셀프 신고'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 전 행장의 검사 요청에 따라 금감원은 6월까지 KB금융과 국민은행을 상대로 검사를 실시했고, 지난달 KB금융 임직원에 대한 중징계를 확정했다.

중징계 받은 임원 명단엔 김 전무도 포함됐다. 금감원은 "김 전무 등 지주 임원들은 국민은행의 주전산기를 IBM 메인프레임에서 유닉스로 전환하기 위해 관련 보고서를 조작하는 등 위법행위 사실이 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전산망을 조작하려다 검거된 20대 해커는 20여 년이 지난 후, 국민은행 전산시스템을 교체하기 위해 보고서를 조작하다가 일자리를 잃게 됐다. 해커에 이어 금융 전문가로서 쌓아온 위상도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금융권은 그의 향후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