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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SK종합화학과 사빅(SABIC)의 넥슬렌 합작법인 설립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물론 재계에서도 그 배경에 큰 관심을 보였다.
사빅은 세계 최대 에틸렌 생산규모를 자랑하는 글로벌 1위 석유화학회사로 한해 매출이 55조원(500억달러)에 영업이익이 11조원(110억달러)에 달한다. 특히 영업이익률이 20%에 육박하는 세계적인 업체인데다 사빅의 수장인 모하메드 알 마디(Mohamed Al-Mady) 부회장은 세계 석유화학 업계의 영향력 순위 3위 안에 드는 거물이다.
그에 비해 SK종합화학은 국내 3위 화학회사(에틸렌 생산기준)로, 사빅과 같은 거물급 파트너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게 되자 그 '비법'에 이목이 집중 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의 이같은 글로벌 성장 공식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글로벌 파트너링' 전략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최 회장은 SK이노베이션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데 있어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를 찾았고 합작법인을 통해 사업 성공 가능성을 한 단계 높이고자 노력해왔다.
특히 글로벌 기업과 단순한 사업 파트너 관계를 구축한다기 보다는 인간적인 관계와 신뢰를 먼저 쌓는 등 진정성으로 다가간 결과, SK이노베이션은 석유화학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SK종합화학-사빅, 고성능 폴리에틸렌 넥슬렌 합작법인 설립 -
SK종합화학은 지난 5월 자사의 고성능 폴리에틸렌 브랜드인 넥슬렌(Nexlene)의 생산 및 글로벌 시장 판매를 위한 합작법인 설립 계약(JVA, Joint Venture Agreement)을 체결했다. 이 계약에 따라 양사는 50:50 지분비율로 올해 안에 싱가폴에 합작법인을 설립하며 계약 규모는 5억9500만달러(한화 약 6089억원) 규모다.
이 합작법인은 SK종합화학이 올 초 울산CLX 안에 완공한 넥슬렌 공장에 더해 제 2 공장을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하는 등 글로벌 생산기지를 계속 확대해 나가는 한편 사빅과 함께 글로벌 1위 고성능 폴리에틸렌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넥슬렌 합작사업은 최태원 회장과 알 마디 부회장의 오랜 우정이 밑바탕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2004년 알 마디 부회장이 방한해 SK 사옥을 찾으면서 처음으로 만나게 됐다. 이후 최 회장은 중동을 방문할때마다 알 마디 부회장과의 만남을 일정의 최우선으로 뒀으며 2008년 알 마디 부회장이 보아오포럼 이사에 선임된 것도 최 회장 추천 덕분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은 2011년 3월 자원경영을 위해 중동을 방문했을 때 사빅의 알마디 부회장을 만나 고성능 폴리에틸렌 분야의 전략적 제휴를 처음 제안했으며 이후 2년여의 실무협상을 거쳐 결실을 맺었다.
당시 최 회장은 그동안 "사빅과의 제휴는 화학사업의 글로벌 성장을 위해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며 합작성사를 그룹 차원에서 독려해왔으며 협상 고비 때 마다 직접 사우디로 날아가 사박 경영진과 10여 차례 담판을 짓는 등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SK종합화학과 사빅의 합작사업 설립 계약식이 있던 날, 최 회장은 옥중 서신을 통해 "3년 전 저희들이 교환했던 '아이디어'가 드디어 결실을 맺었습니다. 뜻깊은 자리에 참석하지 못해 미안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등 사빅과의 합작 사업이 결실을 맺은 것에 대해 벅찬 마음을 전했다.
△SK종합화학-JX에너지, 울산아로마틱스 프로젝트 -
SK종합화학은 일본 최대 에너지 대기업인 JX에너지와 각각 50%씩 총 9363억원을 투자해 울산아로마틱스(UAC, Ulsan Aromatic Corporation) 공장을 건설했다. JX에너지가 국내에 투자한 사례 중 최대 규모다.
이로써 SK이노베이션 계열은 국내 석유화학 기업 중 최대 규모이자, 세계 5위 규모인 연 281만5000t(SK 지분물량)의 파라자일렌(PX)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울산아로마틱스는 지난 6월부터 PX 상업생산을 시작했으며 현재 가동률은 100%다. 여기서 생산된 PX와 벤젠의 95%는 중국 등 해외시장에 수출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울산아로마틱스가 JX에너지와 SK종합화학이 손잡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생산기지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무라 JX에너지 회장은 울산아로마틱스 준공식 날 "이렇게 훌륭한 결실을 맺도록 함께 노력해 준 '소중한 벗' 최태원 회장과 SK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SK종합화학과 JX에너지의 글로벌 파트너링은 최태원 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빛을 발한 사례로 꼽힌다.
SK이노베이션과 JX에너지는 지난 2004년부터 경영진 간의 공동 세미나 등을 통해 교류관계를 맺어왔으며 2007년에는 전략적 제휴를 맺기도 했으나 이후 몇 년 간은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최태원 회장은 기무라 회장과 연구모임을 이어오며 우의를 다지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던 중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사태가 발발했고, 당시 JX에너지가 정유공장 가동 중단으로 2억달러 어치의 원유를 처리하지 못하게 되자 SK이노베이션이 이를 전량 구입해 주고 일본에 부족한 각종 석유제품을 공급해 주는 등 파트너십이 공고해졌다.
보수적인 일본기업 특성상 JX에너지가 해외 투자 법인의 첫 파트너로 SK를 선택한 것은 이런 노력이 바탕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JX에너지와는 아직도 매년 정기 교류회를 통해 새로운 글로벌 사업 전략 등을 논의하고 있다.
△SK종합화학-시노펙(SINOPEC), 우한 에틸렌 합작 프로젝트 -
SK종합화학이 중국 국영 석유기업인 시노펙(SINOPEC)과 함께 후베이성 우한(武漢)시에 완공한 에틸렌 합작 프로젝트는 SK그룹의 중국 사업 중에서도 최대 성과로 꼽힌다.
이 사업은 한-중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 공장 프로젝트로 나프타분해설비를 통해 연간 약 250만t의 유화제품을 생산하는 총 투자비 3조3000억원이다. 합작법인 지분 구성은 SK와 시노펙이 각각 35대 65 비율로 나뉜다.
중동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기업 중 중국 에틸렌 사업에 진출한 것은 SK가 처음이다. 중국은 그동안 원유나 자체 기술력을 보유한 일부 서구 메이저 회사와 중동 산유국 기업에 한해서만 에틸렌 합작사업 참여를 선별 허용해왔기 때문이다. -
최태원 회장은 이러한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2006년부터 7년간 뚝심 있게 시노펙 최고 경영진과 중국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해 합작사업을 성사시켰다. 특히 그는 '중국에 제 2의 SK를 건설하겠다'는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을 펼치며 10여 차례 중국 정부 및 시노펙 관계자를 면담하는 등 사업 추진을 진두 지휘해 결실을 맺었다.
SK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은 국내에서 정유업계 1위, 에틸렌 생산 3위, 윤활유 및 윤활기유 생산 1위라는 화려한 성적표를 보유하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의 수많은 메이저 기업들과 비교해보면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면서 "최태원 회장이 지휘 하의 '글로벌 파트너링' 전략을 통해 SK이노베이션은 협소한 국내 시장을 벗어나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의 주인공으로 도약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