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원료용 수입 중유에 연간 250억 규모 부과 논란 특소세 시절 설탕, 커피, 가전 등 포함됐지만 대부분 사라져원료 개소세 부과, OECD 등 선진국 포함 주요 66개국 중 유일기업, 혜택 아닌 '올바른 법' 원하지만 … 정부, 세수 줄까 '모르쇠'
  • ▲ ⓒ그리스신화 속 '정의의 여신' 디케.
    ▲ ⓒ그리스신화 속 '정의의 여신' 디케.
    대법원 중앙홀 '정의의 여신상'. 아름다운 그리스 신화 속 여신 중, 꽃이 아닌 '칼(검)'을 든 여신. 바로 '디케(Dike)'다. 왼 손에는 죄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오른 손에는 누구라도 엄벌하는 '칼' 한자루를 들고 서슬 퍼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본다.

    디케는 각 나라별 예술가들의 창작 과정에 따라 안대로 눈을 가리기도, 두 눈을 뜨고 있기도 한다. 눈을 가려버린 디케는 중세 말기에 법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자 '눈이 멀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 디케는 눈을 부릅뜨고 대한민국을 직시하고 있다. 

    하지만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정유업계를 바라보는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는 듯 하다.

    정유업계가 글로벌 시장 및 국내 제조업체와의 형평성은 물론, 법 취지와 맞지 않아 자칫 이중과세 처럼 오해의 소지가 있는 법률 개정을 수차례 요청하고 나섰지만, 세수 부족을 이유로 정부는 모르쇠다. 부작용이나 법률 충돌 등의 문제에는 관심조차 없다.

    바로 '개소세'다.

    개별소비세는 최종소비재 등 특정 물품이나 서비스의 소비 행위에 부과된다. 단순하게 말하면 생산과정이 아닌 최종 소비단계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과거에는 '특별소비세'로 불렸다. 법이 제정됐던 1976년 자가용(자동차)과 휘발유 등 연료 등 석유제품, 호텔, 룸살롱 등 유흥주점, 골프장 등 호화소비에 붙여졌던 세금이다. 고도의 경제성장 후 국민소득이 개선되면서 2007년 12월 31일 개정법률이 공포돼 2008년 1월 1일부로 '개별소비세법'으로 변경됐다.

    특소세 시절에는 자동차 이외에도 카메라, 피아노, 스키·골프용품은 물론 차, 커피, 자양강장제, 탄산음료, 설탕, 냉장고, TV, 세탁기까지 세금을 메겼다.

    "자가용 타고 다니는데… 특별소비세, 뭐 당연히 내야지". 사치성 물품 소비를 억제하려는 취지에서 부과하게 된 만큼, 조세 저항 역시 적었다. 일부 부유층만 내다보니 국민저항도 없었다. 일부는 아직도 개별소비세 명목으로 남아 있지만, 대부분 사라졌다.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웃을 일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이미 생활필수품이 돼버렸는데…

    자동차의 경우 부유층 전유물에서 생활필수품이 된 지 오래지만, 아직도 수송용 연료와 함께 개소세 부과 품목으로 남아 있다. 이유는 정부가 조세저항 없이 편하게 천문학적인 세금을 쉽게 거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업계가 세금을 거둬 납부해 주는 만큼, 정부 입장에서는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다.

    개소세는 최종 제품, 그리고 최종 소비자가 부담한다. 특히 원료에 개소세를 부과하는 경우는 OECD 등 선진국을 포함한 주요 66개국 중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하지만 엉뚱하게 정유사에서 원료로 수입하는 중유(벙커C유. 원유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에 개소세와 교육세까지 부과하고 있다.

    휘발유 등 석유제품은 CDU(원유정제시설)를 통해 1차적으로 생산된다. 이 과정에서 벙커C유 등 중유가 절반 넘게 병산된다. 과거 기술이 없을 때에는 벙커C유를 선박용 연료로 판매했다. 선박용(벙커링)의 경우 서로 상대국을 오가는 만큼 면세다.

    그러나 이마저도 친환경 바람이 불면서 판매처를 잃고 있다. 이에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HD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4사는 과거 수십조원을 투자해 고도화설비를 구축, 중유를 재처리하는 방식으로 다시 석유제품을 뽑아낸다. 업계에서 이 설비를 '지상유전'이라 부르는 이유다.

    고도화설비 가동과 고유가로 정유사는 그나마 없던 기회를 맞이한다.

    중유는 원유를 정제하고 남은 아주 뻑뻑하고 헤비한 기름으로, 고도화설비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게다가 시장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가격 또한 원유보다 싸게 거래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 통해 조금이나마 원가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정유사가 원료용으로 수입한 중유량을 살펴보면, 2019년 3158만5000배럴(21억579만8000$), 2020년 2962만6000배럴(15억818만7000배럴), 2021년 3723만9000배럴(25억9165만6000배럴), 2022년 2080만배럴(19억1721만4000배럴), 2023년 3151만2000배럴(26억1070만4000$) 등이다.

    원료용 중유는 수입과정에서 원유와 같이 수입관세, 석유수입부과금은 물론, 내국세인 개소세(ℓ당 17원)와 교육세(ℓ당 2.55원) 등 19.55원을 추가로 부담한다. 같은 원료인데 형평성이 어긋난다.

    아울러 이 중유를 원료로 생산된 휘발유 등 석유제품에 또 다시 교통에너지환경세(휘발유, 경유), 개별소비세(등유, 중유, LPG), 교육세(교통에너지환경세 및 개별소비세의 15%), 주행세(교통에너지환경세의 26%), 부가가치세 등이 부과된다.

    일부 제품의 경우 추후 공제를 통해 환급을 받는다지만, 이미 비과세 제품인 나프타, 항공유, 아스팔트로 생산되는 경우 돌려받을 수가 없다.

    석유화학산업의 경우 원료로 사용되는 석유류는 이미 면세 중이며, 시멘트산업과 철강산업 역시 원료용 유연탄을 과세 대상에서 제외했다. 수소제조용 원료로 사용되는 LNG 역시 Kg당 8.4원(연료용 사용시 60원)의 낮은 세율(18% 수준)을 적용 중이며, LPG도 석화산업용 원료는 개소세가 없다.

    현재 정유 4사가 요구하는 법 개정 효과는 꼴랑 250억원 수준이다. 국제유가 시황과 지정학적 이슈에 따라 적게는 수천억에서 많게는 수조원 대의 적자를 경험해 온 업계 입장에서 보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규모다.

    지금은 원료로서 비중이 큰 중유에 붙는 개소세는 최종소비자를 담세자로 예정해 과세하는 개별소비세법 특성에 맞지않다. 또 비과세 품목인 항공유와 나프타 등 일부 제품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지게 된다.

    정유업계가 원하는 건, 혜택을 달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잘못된 법안을 바꿔 달라는 요청이다.

    잘못된 기준과 법은 다양한 오해와 충돌로 이어진다. 단순하게 세금 걷기가 쉽다는 이유만으로 업계와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지금 자동차는 폼나는 부유층 소유물이 아니라, 동네 마트에 갈 때도 사용하는 생활필수품이다.

    잘못된 법은 바꿔야 한다. 멀쩡하게 두 눈을 뜨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의의 여신상 디케의 눈을 가려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