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적인 제품을 일본답게 광고…니신 컵라면


글로벌화 by 덴츠 도쿄 

별안간 앞으로 사내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는 공고가 난다. 토익이 300점인 직원들, 모국어인 일본어조차 자신 없는 직원들 앞에 멋지게 R을 발음하는 원어민이 나타난다. 영어 자체가 무서운 사원들이 서양인에게 첫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 18세기식 전투로 표현된다. 

이건 다름 아닌 일본 니신(日淸)의 컵라면 광고다. 니신은 일본의 대중문화 코드를 희극적으로 표현해 1997년 칸 국제광고제(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에서 ‘올해의 광고주’로 선정되기도 했던 기업. ‘배고프면 싸울 수 없다’ 연작 중 첫 번째 필름인 이 ‘글로벌화’는 ‘미팅’, ‘페이스북’ 편과 함께 2014년 스파이크스 아시아 필름 부문 은상을 받았다. 

일본은 20세기 초중반 아시아의 유일한 패권국이었다. 서양문화권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변방 국가가 1,2백년 늦게 제국주의 전장에 뛰어들었는데도 끝내 미국과도 ‘맞짱’ 뜰 만큼 성장했다. 

당시 일본의 개개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큰 그림을 볼 수 없는 장기판 위 ‘졸’로 나섰던 군인들, 즉 총을 들고 동남아시아의 밀림을 누비던 병사나 돌아올 연료도 없이 가미가제로 출격한 전투기 조종사의 심정 말이다. 



  • 현대를 사는 한국인으로선 도저히 알 수 없다. 그래도 니신의 컵라면 광고 속에서 있는 힘껏 ‘아임 화인 땡큐!’와 ‘앤 유?’를 외치며 공방전을 펼치는 사원들과 일본제국주의 시대 군인들 사이에서 한 가지 공통점은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 도망칠 수 없고, 도망쳐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게 우리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일본인의 스테레오타입이다. 세계대전 기간 프랑스 사람들은 전쟁의 당위성에 대한 철학적 토론을 했고, 미국인들은 전쟁을 여성의 사회진출을 위한 기회로 삼았으며, 영국인들은 나치가 공습을 하든 말든 묵묵히 자기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명령에 복종’했다. 

    결국 이 광고가 일본적으로 보이는 건 단지 과거를 연상시키는 전투장면 때문만은 아니다. 토익점수야 어떻든, 불만이 있든 없든, 집단의 일원으로서 일단 회사 방침을 따르는 모습 때문이기도 하다. 

    덴츠와 함께 니신의 광고대행사로 일하는 하쿠호도는 스파이크스 아시아에서 열린 세미나를 통해 일본 광고의 두 축이 선(禪)과 아니메(일본식 애니메이션)라고 했다. 질서와 혼돈으로도 설명되는 이 개념은 이 ‘글로벌화’ 광고에도 아주 잘 들어맞는다. 혼란스러운 갖가지 개인적 갈등 속에서도 전체는 여전히 명령에 따라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