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대책회의 국회일정으로 취소 엔저활용 설비투자 '0'

  • "일본 엔화가 우리 원화보다 빠르게 약화되면서 국내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이 악화됐다. 하지만 아직은 기준금리에 손댈 때는 아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진단이다.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모니터링 수준을 높이고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처방이다.


    나날이 가속화되고 있는 엔저에 대한 우리나라 한은 총재와 기재부 장관의 진단과 처방이다. 적극적인 개입과 대책에는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도 없는 딱한 처지가 그대로 묻어난다. 하지만 정부와 중앙은행의 이같은 한가한 대응에 전문가들과 경제현장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14일 열릴 예정이던 정부의 거시경제금융회의 조차 국회 일정을 이유로 무기한 연기됐다. 당초 기재부 1차관과 한국은행 부총재,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금융감독원 부원장, 국제금융센터장 등은 '저물가·저성장·엔저'로 대표되는 '3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관련 사항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국회 상임위와 겹쳐 열리지 못했다.

     

    물론 수시로 열리는 경제 상황 점검회의라고는 하지만 엔화값이 하락하며 한국 경제를 연일 위협하고 있고 금리 인하와 재정 확대정책에도 불구하고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시점이어서 관련 회의 무산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이런 가운데 14일 외환시장에선 엔·달러 환율이 116엔선을 다시 넘어서면서 원·달러 환율도 1100원선을 돌파했다. 조만간 엔화가 달러화 대비 125엔까지 오르고 원·엔 환율은 800원대 중반까지 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문자 그대로 엔저의 공습이요 쓰나미 수준이다.

     

    930-940원 대에서 횡보하고 있는 원·엔 환율이 100엔당 900원까지 내려가면 국내 총수출 8.8%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이미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력 수출기업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 ◇ 대응책이 없다..."손놓은 정부"

     

    하지만 엔화약세를 저지할 근본대책을 추궁당하고 있는 정부는 마땅한 대책이 없어 전전긍긍이다. 기축통화국인 일본이 엔화를 마구 찍어 시장에 내놓다보니 직접적으로 엔·원 환율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엔과 원 모두 달러를 통해 거래되는 재정환율로 원·엔은 원·달러와 엔·달러 환율을 바탕으로 가치가 정해지는 탓이다. 만약 원화를 떨어뜨려 엔저를 방어하려면 정부는 원·달러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6일 주형환 기재부 1차관이 국회에서 "엔화와 원화가 동조화해서 움직이도록 하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전해져 관심이 집중됐다. 정부 당국자의 시장개입 발언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재부는 이내 톤다운에 들어갔다. 최근 국제통화의 동조화 현상을 설명하면서 원·엔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필요하면 국제적으로 용인된 시장 안정 노력을 하겠다는 취지였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의 고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일 대응책인 기준금리 인하도 손을 대기가 쉽지않다. 섣불리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대응하면 미국의 출구전략이 본격화되면 달러 강세와 내외금리차 축소로 또다른 혼란을 빚을 수 있다. 때문에 정부는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추이 점검에만 몰두하고 있다.


  • ◇ 미시대책 한달...현장에선 무용지물

     

    앞서 정부는 지난달 초 엔저활용대책을 내놓았다. 엔저를 활용해 시설투자에 적극 나서는 기업에 금융·세제 지원을 하겠다는 이른바 '역발상 대책'이었다.

     

    급격한 환율 변동에 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주요 골자로 환 위험 관리가 취약한 수출 중소기업에 정책자금 지원을 확대하거나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엔저를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과 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방안이 제시됐다.

     

    자동화설비 관세감면대상을 중견기업까지 확대해 30%의 감면율을 적용하고 엔저 피해기업의 단기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환변동보험의 보험료 부담을 절반으로 감면해 주는 방안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한달여가 경과한 현재 대책은 무용지물에 가깝다. 엔저를 활용해 실제 설비투자에 나선 중소.중견기업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점이 늦은 데다 기업들이 현장에서 활용하기에는 괴리감이 크다는 지적 등이 주원인이다.

     


  • ◇ 엔저 2-3년 고착화...상쇄대책 긴요

     

    우려스러운 것은 엔저 고착화 현상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엔저현상이 앞으로 2-3년간 이어지고 슈퍼달러도 같은 기간만큼 연장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엔저와 강달러의 고정변수가 된다는 얘기다.

     

    현대경제연구원 등은 내년에도 미국 경제 호조와 일본 경제 악화라는 이중 구조로 인해 엔화약세와 달러 강세 추세가 계속돼 현재 달러당 112~113엔 수준보다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럴 경우 한국의 수출 모멘텀은 더욱 약해지고 피해규모는 전방위로 확산될 수 있다.

     

    노무라증권은 이번 엔저가 한국 경제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은 이전보다 클 것이며 불확실성과 한국 증시 부진에 따른 민간 소비 위축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투자를 늦출 것이라고 예측했다. LIG투자증권은 결국 원고엔저가 심화되고 국내 수출기업의 고전이 예상된다면서 일부 수출기업은 선진국의 경기부양으로 물량은 증가하나 원화가치 강세와 엔화가치 약세의 이중고로 수출마진이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일본기업들은 엔.달러 상승에도 달러표시 가격을 인하하지 않고 있다. 환율상승으로 인한 환차익을 고스란히 남기는 방법으로 힘을 비축한 뒤 차즘 가격 인하로 수출시장에서 가격경쟁에 불을 지필 것으로 관측됐다. 수출전선에 일제히 비상등이 켜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외환당국이 더 적극적인 원·달러 정책을 통해 원·엔 재정환율 약세를 상쇄해야 한다고 주문이 많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