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이슈'로 모아지는 지분 매매


  • 27일부터 삼성전자가 장내매수를 통해 2조2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에 돌입한다. 또 이날 삼성전자는 계열사인 제일기획의 주식 10%에 해당하는 1150만주(2208억원어치·26일 종가 기준)를 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입했다. 앞서 전날에는 한화그룹에 화학 계열사 4곳을 2조원에 팔아 넘기는 깜짝 빅 딜(Big Deal)을 진행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삼성그룹내 지배구조 전환을 위한 본격적인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홍성호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일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4개사 매각발표 직후 자사주 취득계획과 제일기획 주식 취득에 대해 공시했다"며 "이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바탕으로 지배구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자사주매입, 지배구조 전환 or 지주사 전환?

    삼성전자는 지난 26일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보통주식 165만주와 우선주 25만주를 이날부터 내년 2월26일까지 장내매수를 통해 자사주를 매입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측은 이번 자사주 매입 결정에 대해 "주가 안정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취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5일 종가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취득 예정금액은 보통주 1조9635억원, 우선주 2298억원으로 총 2조1933억원에 이른다. 이번 자사주 매입이 완료되면 삼성전자의 자사주 중 보통주 지분율은 기존 11.1%에서 12.2%로 높아지는 동시에 우선주 지분율 역시 13.0%에서 14.1%로 올라가게 된다.

    7년여만에 2조2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나선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주주환원정책이긴 하지만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순으로 보고 있다.

    박중선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그룹내 시가총액, 매출액, 순자산에서 약 2/3를 차지하지만 대주주의 지배력이 약하기 때문에 핵심 계열사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며 "또 삼성생명에 의한 경영권이 향후 금산분리 강화추세에 흔들릴 수 있어 추가적인 지분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 삼성그룹 지배구조 현황 ⓒ 키움증권
    ▲ 삼성그룹 지배구조 현황 ⓒ 키움증권



    또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던 삼성그룹의 지주사로의 전환을 위한 포석으로도 분석되고 있다. 현재 발행주식(보통주) 11.09%인 자사주가 이번 매입으로 12.21%로 늘어나게 되는데, 계열사 및 특수관계인 지분 17.63%까지 합하면 내부 지분률은 지주사 전환도 가능할 정도인 29.85%까지 상승하기 때문이다.

    정대로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금번 확보될 삼성전자의 자사주는 만일 지주사 전환 시 분할과정에서 삼성전자지주회사(삼성홀딩스, 가칭)로 귀속됨으로써 자사주 보유 비율만큼 삼성전자지주회사가 삼성전자사업회사에 대한 지분율 확보가 원천적으로 가능해진다"고 분석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을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 등 지배구조 전환과 연관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삼성SDS상장→삼성전자 자사주 매입→제일모직 상장 이후 그 다음 수순은 삼성전자의 배당확대 정책 및 인적분할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인적분할하기 전부터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으면 자사주를 지주사에 분배함으로써 의결권이 부활돼 사업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높이는 동시에 공개매수에 의한 주식 교환과정에서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환시 수많은 시나리오가 제기될 수 있으나 향후 어떤 시나리오가 전개되든 제일모직이 얼마나 많은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을 것"이라며 "이에 따라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기업은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이 해당되는 것으로 판단되며, 특히 이재용 부회장 등 삼남매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제일모직과 삼성SDS 등이 핵심기업 중에서도 으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일기획 지분까지 취득…전문가 "계열사 지배력 확대"

    같은 날 삼성전자는 자사주 취득계획과 더불어 계열사인 제일기획 주식 1150만주를 취득한다고 발표했다. 취득 방식은 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27일 장 시작 전에 이뤄졌으며, 전일 종가 기준 주당 1만9200원씩 총 2208억원을 제일기획에 지급했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기존 보유지분 2.6%를 포함해 제일기획 지분 12.61%를 보유하면서 2대 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1대주주인 삼성물산과(12.64%)는 불과 0.03%p 차이다.

    삼성전자는 제일기획 지분 취득 목적에 대해 "제일기획의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당사 마케팅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제일기획 지분 매입 역시 삼성전자의 계열사 지배력 확대를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중선 연구원은 "기존 삼성물산을 비롯한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18.6%에 불과했으나, 이번 매입으로 28.6%로 확대됐다"며 "향후 호텔신라, 삼성증권, 삼성화재, 삼성물산 등 지배력이 취약한 기업도 지분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상헌 연구원도 "삼성전자의 제일기획 지분율을 높이는 것도 지배구조 변환의 연장선상에서 고려하면 된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삼성-한화 빅딜, 비주력사 구조조정 및 계열사 단순화

    또 같은날 삼성그룹과 한화그룹 사이의 2조원대 지분거래 빅 딜을 발표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지난 26일 삼성그룹은 삼성테크윈 지분 32.4%(8400억원)와 삼성종합화학지분 57.6%(1조600억원)을 한화케미칼과 한화에너지에게 총 1조90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삼성테크윈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종합화학 지분까지 포함할 경우 한화그룹이 총 81%를 인수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삼성테크윈의 합작사인 삼성탈레스와 삼성종합화학의 합작 자회사인 삼성토탈도 동시에 한화그룹에 양도된다.

    삼성그룹과 한화그룹 간의 이번 거래를 통해 삼성그룹은 그룹 내 상대적으로 가장 취약했던 사업군 중 하나인 석유화학사업을 구조조정한 셈이고, 한화그룹은 업황 저점에서 비싸지 않은 가격에 석유화학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음으로써 서로 '윈윈(win-win)한 거래'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한화그룹 입장에서도 삼성종합화학 지분 57.6%의 인수금액인 1조600억원은 삼성종합화학의 3분기말 장부가치 1조9000억원 기준 PBR 1배 수준으로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고려하면 높지 않은 가격이라는 분석이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룹 내 비주력 사업 정리 수순으로 해석된다"며 "최근 합병을 추진하다가 무산된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삼성정밀화학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빅딜이 단기적으로는 인수전후로 인한 불확실성이 확대돼 급락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사업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긍정적인 시너지가 날 것으로 기대했다.

    김익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화그룹의 역사 자체가 방산과 석유화학이기 때문에 이번 삼성테크윈 인수를 계기로 핵심사업을 집중 육성할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한화가 항공기 엔진사업을 정상궤도로 영위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테크윈 엔진제조 인력 유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 피인수된 삼성계열사들의 경우 단기적으로는 삼성프리미엄 소멸로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으나, 한화그룹이 방산부문에 역량을 집중해 육성할 경우 기존 삼성테크윈의 항공기 엔진부문에다 한화의 미사일, 무인기 등의 항공방산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권성률 동부증권 연구원은 "시장에서는 삼성그룹에서 버린 카드라는 인식과 인수전후에 발생할 대규모 빅베스(경영진 교체시기에 앞서 부실자산을 한 회계연도에 모두 반영함으로써 잠재부실이나 이익규모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회계기법) 우려감으로 강한 하락을 보있 수 있겠다"며 "그러나 최근 삼성테크윈이 '방산전문, 항공기부품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전략을 밝혔던 것을 생각하면 과격하지만 충분한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냉정한 시각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이슈'로 모아지는 호재들, 주가 흐름 '긍정적'

    이후 주가 흐름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과거 2000년부터 10여차례나 자사주 매입을 실시했던 삼성전자는 이 기간 주가 상승을 동반한 경우가 단 3차례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이슈와 맞물리면서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확대하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그만큼 경영권이 안정되면서 프리미엄도 붙을 것이란 해석이다. 삼성그룹은 현재 이재용 부회장→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이정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그룹내 사업조정과 지배구조 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장기적으로 이번 자사주 매입은 의미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때문에 이번 자사주 매입 발표는 삼성전자 주가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27일 외국인 순매수 상위종목에 삼성물산(250억7100만원)과 삼성전자 우선주(242억1300만원), 삼성SDI(234억6300만원), 삼성전기(137억8500만원) 등 상위 1~4위를 삼성그룹주가 휩쓴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주가의 흐름이 이 같은 지배구조 이슈보다는 4분기 실적과 배당정책에 달려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가근 KB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경험상 자사주 취득이 주가 부양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는데, 이는 외국인들의 강한 매도세에 기인한다"며 "이는 외국인들이 기대하는 주주환원 정책은 배당 성향의 확대를 통한 주당 배당금의 증가인데 지난 2007년 이후로 삼성전자의 배당성향은 5.2%까지 하락하면서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배당정책이 이뤄지느냐 여부와 함께 4분기 실적에서 삼성전자가 애플의 아이폰6 출시에도 불구하고 선방을 할 수 있는지 여부가 주가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 ▲ 삼성그룹 지배구조 현황 ⓒ 키움증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