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올림픽에 설치된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시대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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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소치의 한 파빌리온 외벽에는 거대한 얼굴들이 나타나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러시아의 이동통신 회사인 메가폰이 설치한 ‘메가페이스 파빌리온’ 전면 외벽에 사람들의 얼굴이 입체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 것.이 구조물은 2014년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 이노베이션 부문에 출품된 작품이다. 출품자인 메가폰은 ‘얼굴은 가장 간단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고 했다. 움직이는 3차원 디지털 얼굴 부조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기에 이노베이션 부문 그랑프리까지 차지할 수 있었을까?메가페이스 파빌리온 외벽에 나타난 거대한 얼굴들은 동계올림픽 스타 선수들이나 유명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 얼굴들은 휴대전화로 자기 얼굴을 찍어 보낸 평범한 시민들의 것이었다.일종의 ‘키네틱 건축(Kinetic Architecture)’으로도 볼 수 있는 이 설치물은 ‘움직이는 러시모어 산’으로 불리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런던에서 활동하며 ‘미래의 건축가’로 주목받는 아시프 칸(Asif Khan)이 실제로 설계를 담당하기도.원리 자체는 그다지 복잡할 것 없다. 거대한 LED 화면 위에 설치된 1만1천 여 개 액추에이터들이 화면 위로 최대 2미터까지 튀어나오며 일반시민들의 얼굴을 3차원으로 표현해내는 방식이다. 사진의 픽셀 밝기에 맞춰 액추에이터들이 움직여 각각 3차원 픽셀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수많은 동계올림픽의 스타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바로 그 현장에서 일반 러시아 시민들의 얼굴이 거대한 건물 외벽의 주인공이 된 것은 대단히 시사적인 일이다. 역사는 여전히 우승자만 기록할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무명의 관중 없이는 역사에 기록할 올림픽도 있을 수 없다. 더욱이 그곳은 공산주의가 태동한 바로 그 나라다.공산주의의 취지대로라면 율리나 리프니츠카야 같은 피겨 스타나 그 자리에서 올림픽 관람을 즐기는 일반시민이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대등한 위치여야 한다. 공산주의는 경제적 평등을 이루는데 실패했지만, 소셜네트워크는 감성적 평등을 이루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 어쨌든 소셜네트워크 덕분에 개개인 모두가 어느 한 ‘페이지’에서나마 주인공이 될 수 있게 됐으니까.미국 사우스 다코타 주의 러시모어 산 화강석에 새긴 네 명의 대통령이 미국 건국의 주인공이라면, ‘메가페이스 파빌리온’에 나타났다 사라진 수많은 ‘인민’들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연결되는 소셜네트워크 시대의 주인공들이다. 그 인민들은 이제 절대권력자를 위해 매스게임을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이미 전자장치 위에 달린 1만1천 개의 액추에이터들이 새로운 권력자가 된 인민 개개인을 위해 매스게임을 해주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