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은 아예 백기투항…한국GM 11년 만에 '호봉제' 재도입 하기도
  • [취재수첩]최근 한국 산업계는 통상임금 이슈 외에 성과위주 연봉제 문제를 놓고도 말이 많다.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내는 사람이 더 많은 임금을 챙겨간다는 지극히 정상적인 논리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 이슈의 최전선에 서있는 것은 현대중공업 사무직 노조들이다. 이들은 주머니사정이 어려워진 회사가 1960년생 이전 출생자로 과장급 이상 직원 1500여명에 대해 실시하는 희망퇴직과 성과위주의 연봉제 도입 실시에 반발하며 사무직 노조를 신설했다.

    2014년도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 아직까지 사측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생산직 노조들도 이들을 돕겠다며 거드는 형국이다. 생산직 근로자들에게는 해당되지도 않는 사실이지만 그들은 연봉제도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회사를 몰아가고 있다.

    그들의 말대로 연봉제 도입이 근로자들에 대한 임금지급을 최소화하기 위한 회사의 꼼수인 것일까? 

    우선 시가총액 기준 현대중공업을 제외한 우리나라 10대기업은 물론, 경쟁사인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사무직원들의 임금체계 역시 연봉제를 택한 지 오래다. 오히려 이제야 연봉제를 도입하는 현대중공업에 늦은 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판이다.

    호봉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직원들에게 동기부여가 안 된다는 점이다. 열심히 일해도 그만, 먹고 놀아도 그만이다. 군대식 표현으로 짬밥 많이 먹고 계급만 차면 임금은 알아서 오른다.

    이렇다보니 세계 1위 조선소라는 현대중공업의 명성도 예전만 못하다. 최근 발주가 크게 늘고 있는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의 원조는 사실 현대중공업이다.

    현대중공업은 갑판 위에 둥근 화물탱크를 설치한 모스형 LNG선 건조를 통해 1990년대 이 시장을 완전히 주름잡았었다. 이에 도취한 사이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이 공격적 기술개발을 통해 육각형 형태의 화물창을 단 멤브레인형 LNG선을 만들며 전세는 역전됐다.

    모스형 LNG선은 대형화 추세에 맞지 않다며 점차 그 발주가 줄어만 갔고, 지난해 들어선 대우조선해양이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선 대부분을 싹쓸이해갔다.

    또 세계 최대, 최고의 상선 건조 실력을 자랑하다 경쟁사들보다 한발 늦게 해양플랜트 시장에 뛰어든 것도 문제다. 드릴십의 최고라는 타이틀은 삼성중공업이 가져갔고, 반잠수식 시추선의 대표주자는 대우조선해양이 됐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역시 더 늦기 전에 치열한 내부경쟁과 혁신의 필요성을 느끼고 '성과위주 연봉제'라는 카드를 뽑아들었을 것이다.

    정부 역시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통해 성과주의 연봉제 도입을 적극 장려하는 상황에서, 왜 호봉제로 돌아가자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실제 지난해 4월 한국GM이 11년 만에 연봉제에서 호봉제로 임금체계를 회귀한 사례가 있긴 하다. 개인 및 조직의 평가에 대한 객관성이 없고, 조직 내 불신이 만연해졌다는 이유에서다.

    GM(제너럴모터스)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며 미국서 사용해오던 성과위주의 연봉제를 도입하려했지만, 끝내 '한국형 조직문화'에 백기를 들었다.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낸 김 대리가 먹고 놀면서 일한 박 과장보다 많은 임금을 받아간다는 사실이 조직문화를 해치고 부정적 기류를 만들 뿐이라는데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호봉제가 연봉제로 바뀌며 임금 총액의 파이가 좁아드는 것도 아니다. 현대중공업의 경우도 매년 실적에 따라 성과급 총액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의 총액 자체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지 똑같이 임금을 나눠 받다가 열심히 일한 사람이 더 많이 받아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적게 받아가게 되는 차이일 뿐이다.

    연봉제 도입과 관련해 사측에서도 직원들이 이에 납득할 수 있게끔 개인 및 평가의 객관성과 투명성, 신뢰성을 확보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근로자들 입장에서도 회사를 믿을 수 없게 되고, 계속해 불신만 쌓여가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기획실, 인사 관련 부서를 중심으로 영업이익, 수주, 매출, 안전 등을 평가지표로 하는 사업본부별 평가기준을 새롭게 마련했으며, 각 사업본부에서 단기성과에만 급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3~5년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장기성과급여를 지급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