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벗어던지고 소통… 292명 '상왕' 마음 움직여"계열사 함께 인수" 정부 의도 간파… 우투증권 인수 성공
  • ▲ ⓒ 연합뉴스
    ▲ ⓒ 연합뉴스

    “제갈량이 친정에 돌아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내정자가 NH농협금융에서 금융위원회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금융권에서 보인 반응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내정자는 30년 넘게 공직에 몸담고 있다가 지난 2013년 민간 금융사 CEO로 자리를 옮겨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후, 2년 여만에 다시 장관급 인사가 돼 금의환향하게 된 인물이다. 그의 ‘성공 스토리’를 풀어봤다.

    1959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한 임종룡 내정자는 1981년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역시 행시 24회 출신인 신제윤 현 금융위원장과는 동기다. 30여년 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재정경제부(지금의 기획재정부) 은행제도과장, 금융정책과장, 종합정책과장, 경제정책국장, 기획조정실장, 제1차관 등을 거친 후, 2011년 국무총리실장(지금의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그러다가 2013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틀게 된다. 민간 금융사인 NH농협지주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가장 먼저 ‘관피아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정부기관에서 ‘한 자리 해 먹었다’는 이유로 민간기업 회장을 맡게 됐으니,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 아니냐는 목소리가 금융권 안팎에서 나왔다.

    이런 우려에 대해 신제윤 위원장은 “관료 출신이라도 능력만 있다면 민간회사 CEO를 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동기인 임종룡 내정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낙하산 논란보다 훨씬 큰 난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292명의 ‘상왕(上王)’들이 새로운 왕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농협 안팎에서는 ‘292 대 1의 싸움’이란 말 까지 나올 정도였다.

    292명이란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과 291명 대의원 조합장들을 의미한다. 농협은 지난 2012년 신경(금융·경제)분리를 거쳐 금융지주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금융지주는 사실상 최 회장과 대의원 조합장들이 지배하는 계열사와 다름없었다. 농업협동조합법이라는 특별법을 적용받았기에, 관리·감독은 물론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금융지주 지분 100%를 가진 중앙회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가 오기 전 근무했던 두 명의 전임자들은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떠나버렸다. 특히 신동규 전 회장은 최원병 회장과 계속 엇박자를 내다가 “(농협금융 경영은) 제갈량이 와도 안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사표를 던졌다.

    임종룡 내정자는 경제관료 시절 ‘최고의 컨트롤 메이커’, ‘중재의 달인’이란 별칭을 얻은 바 있다. 이런 특기는 농협금융 회장직 수행에 더할 나위 없는 약이 됐다. 노조위원장을 만나 소통과 계열사 자율경영을 약속하는 등 내부 민심 잡기에 힘쓰고, 대의원 조합장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우리투자증권 인수 의지를 설득했다. 결국 취임 두달만인 2013년 8월 중앙회 이사회에서 ‘우투증권 인수를 전폭 지원하겠다’는 만장일치 찬성을 이끌어냈다.

    우투증권 인수전에 등장한 라이벌은 임영록 당시 KB금융 회장이었다. 임영록 회장 역시 은행에 편중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기 위해 우투증권 인수 의지를 강하게 보인 바 있다. 하지만 결국 임종룡 내정자가 한판 승을 거뒀다. 매각자인 정부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내 ‘계열사까지 인수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한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우투증권 인수에 성공하며 실력을 검증받자, 농협중앙회 내부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최원병 회장은 지난해 초 시무식에서 이례적으로 "임 회장과 나는 하나부터 백까지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 말했다. 농협에서 잔뼈가 굵고 임 회장보다 나이가 많은 김주하 농협은행장 역시 “임 회장과 함께 일했던 6개월의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시간이었다”고 극찬했다. ‘금융계 제갈량’이란 별명도 이 때 생겼다. 제갈량도 못 할 거라던 농협금융 운영을 훌륭히 해냈으니, 임종룡 내정자야말로 제갈량이라는 찬사다.

    농협금융 내부에서는 이처럼 혁신의 바람을 일으킨 임종룡 내정자가 연임하기를 바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바람과는 달리 그는 특별히 연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임 회장이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돌았다. 신제윤 현 금융위원장이 사석에서 “임종룡은 이번 정부에서 다시 쓰여야 할 사람”이라는 말로 그를 극찬하면서 이런 추측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2015년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그는 차기 금융위원장에 내정됐다. 금융위 내부에서는 그의 귀환을 반겼다. 금융위 한 관계자는 “금융위 내부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직원들의 신망도 두터운 편”이라며 “신제윤 위원장이 떠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임종룡 신임 위원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 ▲ 22일 아침 직접 승용차를 운전해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임시 집무실로 출근한 임종룡 금융위원장 내정자 ⓒ 연합뉴스
    ▲ 22일 아침 직접 승용차를 운전해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임시 집무실로 출근한 임종룡 금융위원장 내정자 ⓒ 연합뉴스

    22일에는 금융위원장 내정자로서 그의 첫 출근모습이 화제가 됐다.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로 직접 승용차를 운전해 출근했기 때문이다. 농협금융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겸손과 성실을 무기삼아 ‘292대 1’의 싸움에서 승리했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농협금융 회장으로 2년 간 근무한 경력이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자신이 몸담았던 농협에 특혜를 준다는 시비가 일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임종룡 내정자는 "그런 우려가 나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장 경험은 금융위원장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농협금융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온 그가 금융당국의 사령탑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금융권 안팎의 시선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