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지분 7% 보유·합병 불공정"외치자 시세차익 7500억소버린·칼 아이칸 등 과거 외국계 펀드 먹튀사례 본보기 삼아야
  •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가 삼성물산의 3대 주주로 깜짝 등장하며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선 가운데, 국내 증권업계는 결국 '시세차익이 목적'이라는 점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외국계 헤지펀드가 대규모 지분 매입 이후 주가를 띄운 후 재매각을 통해 큰 시세차익을 남기고 빠진 수많은 '먹튀' 사례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일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하며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합병 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아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힌 것.


    엘리엇은 말 그대로 업계에 깜짝 등장했다. 삼성그룹 관계인(13.99%)과 국민연금(9.79%)에 이어 갑작스럽게 삼성물산의 3대 주주로 올라섬과 동시에 삼성그룹과 업계에 충격을 안겼다.


    당장 내달 17일 임시주총을 통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1대0.35의 비율로 합병하는 안에 대한 승인을 받을 예정인 상황에서, 갑자기 외국계 헤지펀드가 합병조건을 문제삼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이라는 점에서, '경영간섭'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반면 최근에 보인 엘리엇의 행보는 '삼성물산 주주 이익에 반한다'는 표면적인 입장과는 반대 양상이다.


    업계는 특히 당초 보유 중이었던 삼성물산 지분이 4.95%였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규정상 지분 5% 이상을 보유할 경우 5일 내 공시를 해야 한다.


    반면 5%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지분을 들고 있었던 엘리엇은 공시의무가 없었기 때문에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았다가, 지난 3일 2.17%를 추가 매입한 이후 시장에 마치 7.12%를 한꺼번에 취득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결국 이번 엘리엇의 행보는 시세차익이 목적이라는 분석이 절대적이다.


    실제로 삼성물산 주가는 엘리엇의 깜짝발표 효과로 4일 10.32% 급등해 엘리엇은 이날 하루에만 723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


    이와 함께 합병조건이 삼성물산에 불리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삼성물산 지분을 추가로 매입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삼성물산이 앞으로도 엘리엇과 같은 외국계 헤지펀드에 언제든 휘둘릴 수 있다는 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의 지분구조는 삼성그룹 관계인이 13.99%를, 국민연금이 9.79%를 들고 있는 것 외에 나머지 68.91%를 기타 기관투자자 및 소액주주가 나눠 갖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헤지펀드를 비롯한 거대 자본이 밀고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미 2004년에도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가 삼성물산 지분을 단기간에 매입·재매각하는 방식으로 30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거둔 바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엘리엇의 행보를 계기로 업계는 지난 2003년 일어났던 'SK-소버린 사태'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타내고 있다.


    당시 영국계 자산운용사 소버린은 SK 지분 14.99%를 보유던 중 경영권 분쟁을 일으켜 주가를 끌어올린 뒤 곧바로 지분을 매각해 7557억원의 차익을 실현해 '먹튀'논란을 가져온 바 있다.


    소버린의 당시 행보 역시 현재 엘리엇의 전략과 비슷하다. 소버린은 SK를 상대로 투명 경영을 요구하며 경영진 퇴진을 추진했고, 우호지분을 확보해 최태원 회장을 압박하며 경영권 분쟁을 일으켜 SK주가를 크게 끌어올렸다.


    KT&G도 지난 2006년 외국계 자본에 휘둘렸던 전례가 있다.


    기업사냥꾼으로 불리던 칼 아이칸은 KT&G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를 선언, KT&G 주식 6.59%를 매입한 뒤 주주 자격으로 사외이사 1명을 확보해 이사회에서 자회사 매각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경영에 개입하는 행보를 보인 후 지분을 매각, 1500억원의 시세차익을 냈다.


    이같은 전례를 비춰봤을 때, 업계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자체는 계획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당장 삼성물산 주가가 매수청구가격보다 높기 때문이다.

     

    전일 종가기준 삼성물산 주가는 6만9500원인데 비해 주식매수청구가는 5만7234원으로 1만원 이상 높은 상황에서, 주주들이 굳이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되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엘리엇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까지 지속적으로 압박해 꾸준히 주가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전망은 나오고 있다.


    결국 이번 엘리엇 사태를 통해 국내 투자자들을 위해 외국계 자본의 무차별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경영권 방어책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함께, 취약한 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업들의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는 당국과 기업 모두의 책임론이 동시에 요구되는 시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과 그룹 측은 이번 합병이 단순 지배력 강화만의 목적이 아닌 합병 회사들의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라는 점을 주주들에게 알리고 약속할 필요가 있다"며 "엘리엇 역시 과거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먹튀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 삼성물산 지분을 대거 사들인 의도를 명확히 알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