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러시아 1차대전 젊은 병사들의 기록 되살려


  파리에서 끔찍한 테러가 일어나고 불과 며칠 뒤, 그 동안 시리아 등 국지적 분쟁들마다 미국과 알력을 빚어왔던 러시아가 결국 칼을 뽑았다. 자국의 민간항공기 폭발이 다에쉬(ISIS의 아랍식 약칭)의 테러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까지 끼어들자 문득 러시아가 1, 2차 대전 때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 동맹이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러시아는 폴란드나 루마니아 쪽 영토와 러일전쟁 패배로 잃은 섬들을 되찾기 위해 황급히 숟가락을 얹었다. 그런 조국을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나갔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전쟁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대규모 포격이나 공습 없이 몇날며칠 씩 참호 안에서 대치하는 일이 잦았다. 

  •   참호 안은 아마도 춥고, 습기 차고, 더러웠을 것이다. 참호 밖으로 고개만 들면 나치의 총알이 날아들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짬 날 때마다 병사들은 고향에 엽서를 썼다. 어머니와 아버지, 고향집, 두고 온 약혼녀가 그립다고 썼을 것이다. 살아 돌아가 다시 그들에게 입맞추고 싶다고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기억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러시아가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계기와 그 일이 전쟁에 미친 영향을 기억하기에도 벅차다. 25,800명 러시아 전사군인들 각각은 모두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죽었을 것이다. 사라져버린 그들의 이야기는 분명 소중하다. 특히나 이따금 큰 권력보다 수많은 개인들의 소셜 네트워크가 더 큰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 지금 보기엔 더더욱.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지 꼭 70년 째, 이미 많은 이야기가 잊혔다. 전선에서 보낸 60억 통 편지들은 대부분 낡고 변색되고 바스러져 버렸다. 구글 러시아는 남은 이야기만이라도 보존하고자 했다. 전선에서 보낸 편지들의 이미지가 디지털 아카이브로 저장되었고, 사람들의 힘을 빌려 주소와 내용을 저장하고 음성파일로도 만들었다. ‘살아있는 기억(Alive Memory)’이라 불리는 이 프로젝트는 유명 정치인, 예술가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정보기술시대를 맞으며 사람들은 컴퓨터의 감시와 지배를 받는 조지 오웰의 ‘1984년’ 같은 세상이 올까봐 두려워한다. 실제 우리가 자발적으로 갖고 다니는 핸드폰이 우리의 행적을 고스란히 기록한다. 그래도 우리는 컴퓨터를 포기하지 않는다. 도무지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전쟁의 거대한 슬픔과 공포마저 컴퓨터가 도와주지 않으면 한 두 세대만에 잊고 마는데, 동네 치킨집 전화번호 같은 걸 어떻게 기억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