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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철강사들이 무리한 시설투자 등 과당경쟁을 펼친게 철강업계 부진의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 중심에는 현대제철이 있다.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립으로 동국제강의 후판, 동부제철의 열연, 포스코의 자동차강판이 잇따라 영향을 받았다. 이제는 특수강 시장까지 위협 받고 있다.
15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국내 철강업체들의 부진 원인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 중국발 공급과잉, 조선 및 자동차 등 수요산업 하락 등이 꼽히지만 무엇보다 현대제철의 무리한 시설투자가 과당경쟁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자급자족식 경영은 자칫 시장 유연성과 규모를 축소시켜, 밀려드는 수입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게 만들수도 있다"며 "현재 공급과잉 문제는 국내기업들의 책임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에 대한 책임론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결국 동국제강, 동부제철 등 중대형 철강사들의 입지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대형사 위주로 업계가 재편되는 양상이지만, 대형 철강사 역시 과당경쟁 부메랑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2000년대 후반 현대제철이 용광로 건설에 들어가면서부터 포스코, 동국제강, 동부제철 등도 경쟁적으로 생산 설비를 확장해 갔다. 대표적인게 후판사업 부문이다. 당시 수요처인 조선산업의 경기가 워낙 좋아 후판 공급이 수요를 못쫓아갔던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2008년에서 2011년새 동국제강 당진 후판공장(연산 150만t), 현대제철 당진 후판공장(150만t), 포스코 광양 후판공장(200만t) 등이 연이어 가동을 시작한 점이다. 당시 국내 후판 수요는 약 1000만t 수준이었는데, 2008년 775만t 규모였던 국내 후판생산량은 2011년 1200만t을 넘어섰다.
동국제강은 현대중공업으로 납품하던 후판 물량이 전무해지고, 포항 후판공장 가동률이 50% 아래로 떨어지는 등 위기가 닥치자 순차적으로 포항 1, 2후판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게 됐다.
동부제철의 경우 현대제철이 고로를 확장하던 시기, 전기로를 짓고 일관제철 사업을 시작하다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부채를 감당못하고 끝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전기로 건설과 함께 열연, 냉연사업을 아우르며 사명을 동부제강에서 동부제철로 변경, 국내 4위 철강사로 입지를 다졌지만 전기로와 열연공장 가동은 아예 중단한 상태다.
최근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동부제철을 시장에 매물로 내놨지만, 인수제안을 받은 포스코, 현대제철 등 업체들은 딱히 관심도 없는 눈치다.
동부제철이 고부가제품으로 분류되는 냉연사업에 아직 강점을 갖고 있지만,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고 2조원이 넘는 부채 또한 부담스런 탓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동부제철의 부채비율은 1만3793%다.
국내 철강설비 과잉화로 에너지, 마그네슘, 니켈 등 신사업에 눈을 돌렸던 포스코의 경영 환경도 예전만 못하다. 현대제철의 등장으로 후판, 자동차강판 등에서 실적이 악화된 것은 물론 신소재 사업에서도 이렇다할 성적을 못내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2014년 권오준 회장이 취임하면서부터 조직의 덩치를 줄이고, 제품 고급화 등 내실다지기에 힘쓰고 있다.
비교적 잠잠했던 특수강 시장도 조만간 판도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이 시장은 세아그룹이 세아베스틸(특수강 상공정), 세아특수강(하공정) 등을 운영하며 안정적 성장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지난해 동부특수강(하공정) 인수로 특수강 사업에 발을 디딘 현대제철이 오는 2월부터는 당진에 연산 100만t 규모의 특수강 상공정 공장의 가동을 시작하며 본격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특수강 대부분은 자동차 회사로 납품되는게 일반적인데, 지난해 현대기아차 내수점유율이 역대최저를 기록하는 등 수요가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 향후 공급과잉이 우려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이에 대해 현대제철 관계자는 "2006년 고로에 진출할 당시에는 시장이 공급과잉 상태가 아니었다"며 "독점이던 포스코 역시 증설을 하면서 경쟁이 심화된 것이지, 우리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일관제철소 건립은 현대차그룹 내에서 자동차강판 등 자동차 소재에 집중하려던 측면이 더 컸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