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PKU]① "밥은 굶어도 약은 먹어야"...단백질 분해 효소 없어 뇌기능·발달 장애 발생최고가 수준의 미허가 긴급도입 의약품 의존… 보험급여 미적용정식 허가된 대체 의약품 시판 예정… 복제약임에도 가격 차이 적어
  • ▲ 보건복지부.ⓒ연합뉴스
    ▲ 보건복지부.ⓒ연합뉴스

    "부모 살아생전엔 그래도 괜찮아요. 밥은 안 먹어도 약은 먹어야 사는데…. 장애가 있어 제 밥벌이는 할 수 있을지 죽어서도 눈이 안 감길 것 같아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수십 년째다.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윤아씨 어머니(63)는 두 자녀 생각만 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윤아(32)·승준(31) 남매는 선천성 대사효소결핍증(PKU:페닐케톤요증)이란 희소질환을 앓고 있다. 이 병은 필수아미노산 페닐알라닌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으로 변하는 데 관여하는 분해 효소(테트라하이드로바이옵테린)의 결핍으로 생긴다. 도파민이 형성되지 않아 뇌 기능 장애와 발달 장애가 발생한다. 현재는 부족한 효소를 약으로 보충하는 것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약을 1시간이라도 늦게 먹으면 증세는 금세 악화해 간질환자처럼 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혼자선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매일 먹어야 하는 이 약이 고가라는 점이다. 희소질환 약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어서 1알에 5만원에 육박한다. 어른은 아이보다 신진대사량이 많아 약을 더 먹어야 하지만, 비싼 약값이 발목을 잡는다. 4알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 약값만 20만원. 한 달이면 600만원을 넘는다.

    생후 10개월이 넘도록 딸이 뇌성마비인 줄로 알았다는 진실(21·가명)씨 어머니는 "병원에선 하루 4알을 처방해주지만, 형편상 3알만 먹인다"며 "약 1알을 더 못 먹여 힘들어하는 딸을 볼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사정은 국내 PKU 환자 중 식이요법이 효과가 없어 평생을 약에 의존해야 하는 18가구가 매한가지다. 이 중 3가구는 윤아네처럼 자녀 2명이 모두 PKU를 앓고 있다. 이 경우 약값만 연간 1억원을 훌쩍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집을 팔아 반지하 셋방으로 옮겨 근근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은 PKU 환자 가족들에겐 필수 덕목처럼 돼 있다.

    정부에서 기초생활보장수급자처럼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가구에 약을 무상 공급하는 특례를 적용하고 있지만, 소득기준을 맞추기가 까다로워 실질적인 혜택을 받는 사례는 매우 드문 실정이다.

    그나마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라는 모임이 만들어지고 2011년부터 보험급여를 적용받게 되면서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약값 고통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가영(21·가명)씨 어머니는 "지금은 본인부담금을 10%만 내고 있지만, 여전히 약값으로 매달 60만~70만원을 지출한다"며 "딸이 이번에 어렵사리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만, 늦게 발견해 약 처방이 늦어지는 바람에 장애 경계에 있어 사실상 취업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가영씨 어머니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약값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처지다.

    가영씨 어머니는 "노후대책은 꿈도 못 꿔요. 어려서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이던 둘째(고2)는 디자이너가 꿈이지만, 미술학원은 엄두도 안 난다"고 덧붙였다.

    가영씨 어머니는 둘째 딸이 너무 고맙다. 부모 관심은 아픈 언니에게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어려서부터 언니 상태를 봐온 터라 또래보다 배려심이 깊다. 아주 가끔 '폭발'할 때가 있지만, 그마저도 안쓰러운 게 부모 마음이다.

    가영씨 어머니는 "둘째가 스트레스로 소리 지르며 울다가도 언니랑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눴으면 한다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찡하다"고 말했다. 현재 가영씨는 논리정연한 대화가 어려운 상태다. 묻는 말에 단답형으로 답하는 정도다. 졸업 후 집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낼 가영씨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그래서 암담하기만 하다.

    이는 PKU 환자 가족들의 공통된 근심거리다. 부모 살아생전엔 어떻게든 약을 먹이겠지만, 독립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처지에서 자녀만 남게 될 상황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다.

    윤아씨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앞으로를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며 "몇 번이나 강물에 몸을 던질까 생각도 해봤지만,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대사이상검사가 의무화되면서 그나마 병을 일찍 발견한 사례인 가람(고3·가명)군 어머니는 "상염색체상 유전질환이다 보니 부모 모두가 보인자임에도 시댁에서 저 때문에 아이가 그렇다는 말까지 들었다"면서 "하지만 그 정도 스트레스는 약값과 아이 미래에 대한 걱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PKU 환자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소관기관인 '한국희귀의약품센터'를 통해 미국 바이오마린사가 만든 '쿠반정'을 치료약으로 수입해 먹고 있다. 스위스 제약업체가 공급하던 '테트라하이드로바이옵테린정' 생산이 중단되면서 다국적제약회사인 스위스 머크세르노사가 판매권을 쥔 쿠반정을 미허가 긴급도입의약품으로 들여오고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보험급여대상 의약품으로 미등재된 상태여서 약값이 비싸다.

    다행히 지난해 PKU 환자 가족들에게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A 의약품전문회사에서 쿠반정과 같은 제제의 '디테린정'을 지난해 식약처로부터 정식으로 허가받아 시판할 계획이라는 소식이다. 현재 디테린정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약제심사 신청이 이뤄진 상태다.

    그러나 PKU 환자 가족의 낯빛은 사색이다. A사가 신청한 디테린정 가격이 쿠반정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윤아씨 어머니는 "환자 가족들은 디테린정이 쿠반정보다 훨씬 저렴하게 등재돼 하루 속히 상품화되길 간절히 바란다"며 "외국에선 제네릭(복제약)으로 알려졌고 가까운 일본은 환자에게 무상으로 먹게 해준다는데 기존 약값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은 청천벽력같은 소리다"고 언성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