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활성화 도움" vs "기존 업체 줄도산" 주류업계 갑론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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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시장에 대기업 참여를 허용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찬반에 대한 갑론을박이 여전한 가운데 농림축산식품부가 관련 연구용역을 통해 규제 완화를 위한 행보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와 주류 업계는 시장 규모 확대를 위해 전통주 시장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견해다. 하지만 전통주업계는 대기업 참여가 허용되면 영세업체 줄도산이 우려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농식품부, 전통주 정의·범위 확대 검토… 연구용역 발주해 법 개정 추진
22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안으로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을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다. 관련 예산도 이미 확보했다. 연구용역 주제 중에는 전통주의 정의와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전통주에는 무형문화재 보유자나 식품명인이 제조하는 민속주와 농업경영체 등이 해당 지역의 농산물을 주원료로 생산한 지역특산주가 포함된다. 전통주로 지정되면 주세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세제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농식품부가 연구용역을 추진하는 것을 전통주 시장에 대기업 참여를 허용하기 위한 정지작업으로 해석한다. 대기업 참여를 두고 주류업계에 찬반 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대기업 진입을 반대하는 전통민속주업계를 설득하기 위한 논리개발에 나섰다는 견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설령 법령을 개정한다 해도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등 관계 기관과 협의가 필요해 쉽게 해결될 성질의 사안은 아니다"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고 (반대 의견을) 설득하려면 (연구용역을 통해) 타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지난 2014년 규제 완화와 시장 규모 확대를 위해 전통주 시장 문턱을 낮춰 중견·대기업에도 문호를 개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농식품부 관계자는 "전통주 관련 산업의 파이를 키우고자 지정요건을 완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며 "대기업이 참여하는 방안까지도 포함해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류 업계 찬반 엇갈려… 2년 흘렀지만 논의 답보상태
농식품부가 규제 완화 검토를 언급한 지 2년여가 흘렀지만, 논의는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시장 반응은 여전히 엇갈린다.
주류업계 일각에서는 대기업 참여가 침체한 전통주 시장 활성화에 도움을 줄 거라는 견해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전통주 시장이 매년 감소하는 가운데 대기업 참여는 시장이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영세한 전통주업계는 연구·개발(R&D) 역량이 떨어져 전통주를 육성하고 세계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전통주는 지역축제 때나 선보이는 수준으로 판로가 없는 실정"이라며 "당장 문 닫을 위기에 처한 업체 처지에서 무조건적인 반대는 실익이 없다"고 덧붙였다.
전통주 시장은 2010년대 초반 일본에서 시작된 막걸리(탁주) 열풍으로 호황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시장이 위축된 상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전체 주류 매출에서 전통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를 기준으로 0.5%에 불과하다.
반면 전통주업계는 반대 견해를 분명히 했다. 대기업이 전통주 시장에서 세제 감면 혜택을 누리면서 마케팅을 본격화하면 문을 닫는 업체가 속출할 거라는 태도다.
이영춘 (사)한국전통민속주협회장은 "대기업 참여가 좋을 건 없다"며 "과거 복분자주 사례를 봐도 초기에는 시장 규모가 커져 좋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존 전통주업체들이 대기업과의 마케팅 경쟁에서 밀리면서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다"고 부연했다.
이 회장은 "전통주는 영세한 지역업체가 지역 농산물을 가지고 소량 생산하는 특성이 있다"며 "지금도 경쟁이 안 되는데 (전통주 생산업체) 범위를 확대해 대기업이 세제 혜택을 받으며 마케팅에 뛰어들면 기존 업체는 죽으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통민속주인 안동소주 한 관계자도 "전통주협회에서 전통주의 통신판매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안다"며 "대기업이 명인들이 담가오던 전통주를 내놓는다면 문화재청이 지정하는 명인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