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금융지주 회장들, 3연임 4연임 이어져 지방 금융지주도 답습, 이찬진 '참호' 지적에도 연임 강행 합병 은행들 여전히 당국과 대통령실에 투서 난무 현 정부 낙하산 보내기 위한 명분 축적용 해석도
  • ▲ 이찬진(가운데)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금융지주회장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찬진(가운데)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금융지주회장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업무 보고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을 향해 "투서가 엄청 들어온다" "부패한 '이너서클'이 돌아가며 해 먹는다"고 고강도 질타를 하면서 금융권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李 대통령의 언급은 금융권의 일반적인 관행에 대한 원론적 수준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발언의 맥락을 볼 때 4대 금융그룹 회장과 지방의 금융지주 회장 및 행장들을 정면 겨냥했다고 볼 수 있다. 금융사 지배구조 수술을 작심하고, 감독 당국 수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차원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금융위원회를 통해 금융회사와 각종 금융협회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모피아(금융위 출신 OB들)들에 대한 경고의 뜻이 담겨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이번 발언이 금융감독원장에 자신의 지인을 앉힌 것처럼, 현 정부와 가까운 인사들을 금융회사에 낙하산으로 내려보내기 위한 정지 작업이라는 해석도 적지 않다. 

    李 대통령 발언, 금융권 고질적 '인사 부패' 직격 

    외환 위기 이후 몇 번의 통폐합이 일어나면서 국내 금융그룹은 KB 신한 하나 우리 등 4개의 대형 금융그룹과 BNK JB DGB 등 지방의 금융그룹으로 재편됐다. 공적자금 투입으로 기사 회생한 우리금융은 완전 민영화에 성공하면서 민간 회사가 됐다. 

    하지만 몸집만 커졌지 지배구조는 여전히 후진적 수준에서 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4대 금융지주는 한번 회장에 오르면 연임은 '기본'이고, 3연임에 4연임까지 일어나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에 한 번 오르면 수십억대 연봉에 황제적 지위에 오른다. 반면 업무는 은행장과 계열사 사장들이 대부분을 책임진다. 

    일부 회장들은 자신들이 물러난 이후 기득권을 행사하기 위해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행장이나 계열사 수장 중 한 명을 낙점에 후계자에 앉히곤 한다. 그런 과정에서 후임 회장이 전임 회장을 '배신'하면서 갈등이 벌어지고, 해당 금융그룹의 지배구조가 무너지기까지 한다. 

    더욱 문제는 국내 금융회사들이 관치에 익숙해져 있고, 과거부터 이어진 낙하산 인사가 횡행하다보니, 금융회사 수장이 되려면 가장 먼저 정치권 실세나 금융당국 실세를 찾곤 한다. 회장 인선 과정에서 학연과 지연이 가장 먼저 가동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정권 들어 회장 인선 작업이 이뤄지거나 끝난 금융그룹과 금융협회장 인선 과정에서도 "이재명 정부에서 회장이 되려면 중앙대 출신의 특정 인사와 연이 닿아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곤 했다. 

    회장 인선 과정에서 여기에 기생하는 인사들의 부패와 기행도 이어졌다. 회장 인선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A금융의 경우 특정 인물이 후보군에 올라 있는 인물들을 향해 우회적 압박을 가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가만 놔두니까 부패한 '이너 서클'이 생겨 멋대로 소수가 돌아가며 계속 지배권을 행사한다. 회장 했다가 은행장 했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10년, 20년씩 하는 모양"이라는 말은 '소문'이 아니라 '실체'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이 대통령 말대로 인선 작업이 이뤄질 때마다 각종 투서가 난무한다. 금융권의 투서는 과거부터 통합 작업이 이뤄진 곳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해진 우리금융과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해진 KB의 경우 유독 투서가 심했다. 최근에는 경영권 다툼이 극심했던 신한금융에서도 이런 투서가 대통령실 등에 적지 않게 올라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투서를 보내는 곳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넘어, 과거 청와대와 지금의 대통령실의 민정 라인에까지 전방위적이다. 이 대통령이 "금융 지배구조 관련 투서가 요즘 엄청나게 들어온다"고 했는데, 이번 정부 들어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십년된 '못된 관행'이다. 

    李 대통령 언급, 낙하산 통한 '제2의 4대 천왕' 전조?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회사 상층부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면서 회장들의 거취에도 상당한 후폭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4대 금융 회장의 경우 회장들의 거취에 영향을 줄지 아직은 불투명하다. 신한금융의 경우 진옥동 회장의 연임이 이미 확정돼 내년 주주총회만 남겨두고 있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채용 재판이 남아 있지만, 연임이 된지 1년차여서 역시 거취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적다. 양종회 KB금융 회장 역시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거취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관건은 회장 인선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금융인데, 금융권에서는 임종룡 회장의 연임이 유력한 것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방의 경우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참호'라면서 정면으로 질타했었던 BNK 회장도 연임에 성공했다. 전북은행장만 전임 정권과의 관계에 대한 의혹에 선임이 연기되는 상황에 처했다. 한편에서는 이 대통령의 '은행장' 발언을 두고 전북은행이 지난 16일 이사회를 열고 박춘원 JB우리캐피탈 대표를 차기 행장으로 선임할 예정이었다가 추가 검증을 이유로 해당 일정을 돌연 연기한 것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다.  

    결국 금융지주 인사는 현재로서는 우리금융지주만 '변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고 나머지 금융회사는 극적인 상황 변화가 아니면 구도가 바뀔 확률이 높지 않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내년 3월 주총을 앞두고 금융사 상층부 구도를 흔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과거 이명박 정부의 경우 산업은행에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명되면서 '회장'이라는 직함으로 올라갔다. 이외에 KB와 우리금융 회장 등에도 정권과 친밀한 인사들이 자리하면서 막강한 회장들이 자리매김, '4대 천왕'이라는 명칭이 붙기도 했다. 

    이번 발언이 금융협회장 등을 겨냥했다는 시각도 있다.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금융 유관 협회장들을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비롯해 김철주 생명보험협회장, 이병래 손해보험협회장 등은 '모피아' 줄기와 맞닿아 있다. 이외에도 임기가 끝났는데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금융 유관기관장도 상당하다.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는 이들 자리를 노리는 인물들이 수백명에 이른다. 

    결국 이번 발언이 '금융회사 지배구조 정화'라는 명분을 만들어 이들 자리를 대거 물갈이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