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공급 쌍방 독점, 경쟁 제한으로 시장기능 한계외국 진출도 걸림돌, 정책금융 등 지원책 필요
  • ▲ 현대로템 창원공장 제작라인.ⓒ연합뉴스
    ▲ 현대로템 창원공장 제작라인.ⓒ연합뉴스

    수요와 공급의 독점적 시장구조를 타파하지 않으면 국내 철도차량산업을 육성하기 어렵다는 의견들이 제기됐다.

    외국 철도시장 진출을 위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국내 철도산업의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선 경쟁을 통해 수요를 늘리는 작업이 선행돼야 하는 데 현재의 독점적 시장구조에서는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지난 15일 더케이서울호텔에서 국토교통부와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교통연구원이 공동으로 개최한 철도차량산업 육성방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나왔다.

    국토부에 따르면 국내 철도차량산업 시장은 연간 1조7000억원 규모다. 철도차량 1조원, 철도부품 7000억원 수준이다. 이 중 내수 규모는 1조원, 수출은 7000억원쯤이다.

    우리나라의 철도차량산업은 국내외에서 신규 투자 감소와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으로 어려운 여건에 놓였다는 진단이다.

    내수시장은 운영사의 적자가 누적되면서 낡은 차량에 대한 대체 투자가 부족한 데다 철도망 개통 등 신규 투자도 감소하는 등 전반적으로 물량이 적고 불규칙하다. 국내시장 발주 규모를 보면 2012년 8364억원, 2013년 2115억원, 2014년 9987억원으로 널을 뛰듯 불안정하다.

    정비업과 리모델링 등 차량 출고 이후 유지보수 시장(애프터 마켓)에 대한 조성도 미흡해 국내 차량제작사와 부품업체의 경우 신규 차량 물량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실정이다.

    세계 10위 수준인 현대로템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4%에 불과하다. 국토부 설명대로면 세계 철도차량 시장 규모는 70조원 상당이다. 세계 시장은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 간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 등 후발주자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무한 경쟁 체제에서 우리나라의 차량 수출실적은 저조하다. 2010년 4548억원이던 것이 2014년에는 2546억원으로 반 토막 수준까지 떨어졌다. 부품 수출실적도 2010년 2882억원에서 2014년 2089억원으로 제자리걸음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철도전문가들은 국내 철도차량산업의 저성장 원인을 독점적인 시장구조에서 찾는다. 국내 시장은 공급은 로템, 운영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 공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공급의 경우 소규모 업체를 제외하면 사실상 로템이 독점적 지위에 있다 보니 시장 변화에 둔감하고 연구·개발(R&D)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글로벌 차량제작사의 R&D 규모를 보면 캐나다 봉바르디에(세계 시장 점유율 2위)는 매출액의 1.95%, 프랑스 알스톰(4위)은 1.8%, 일본 히타치는 3.6%를 각각 투자했지만, 로템은 1%가 안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로템 관계자는 "지난해 KTX 산천의 하자와 관련해 원인을 규명하고 개선하는 데 큰 비용이 투입되다 보니 R&D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며 "예년보다 투자 규모가 줄어든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수요도 코레일 등 운영사들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차량·부품에 관한 자체 기준을 설정하다 보니 품질검증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등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운영사가 차량·부품 수급정보를 독점하다 보니 업체들이 운영사 눈치를 살피며 종속되는 것도 문제라는 견해다.

  • ▲ 수서발 고속철도(SRT).ⓒ㈜SR
    ▲ 수서발 고속철도(SRT).ⓒ㈜SR

    공청회에 참석한 한 철도전문가는 "내수 시장을 키우려면 코레일이 독점하고 있는 지역 간 철도사업에 대해 민간 개방이 필요하다"며 "코레일의 자회사 성격이긴 하지만, ㈜SR이 수서고속철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게 되면 운행방식이나 비용, 운임 등에서 많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유럽의 경우 하나의 노선에 여러 운영사가 참여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구간마다 운영사가 달라 담당구역을 벗어날 때마다 기관사가 바뀌는 장면도 목격하게 된다"며 "폐쇄적인 시장구조의 우리 처지에선 상상이 안 가지만, 철도 선진국들은 다양한 운영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부품산업에 대해서도 "공급업체가 로템밖에 없다 보니 부품업체가 로템에 사실상 종속되는 구조"라며 "경쟁을 해야 기술 발전도 꾀할 수 있는데 부품시장 규모가 작다 보니 대부분 영세한 업체가 사후관리나 품질안전 확보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전문가도 시장 구조 다변화를 경쟁력 확보 방안의 필수조건으로 꼽았다.

    그는 "국내 시장이 규모가 작은데 연도별로 철도차량 수요에 차이가 있다는 건 결국 운영사의 적자로 말미암아 차량 조달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이라며 "민간 운영사가 참여해 더 나은 서비스로 수요를 높이면 공급도 증가해 시장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지역 간 철도사업은 코레일이 독점하고 있는데 참여하겠다는 민간사업자가 있어도 코레일이 운영 침해를 이유로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실정"이라며 "기존 사업노선 운영을 신규 사업자에 넘기면 침해로 볼 수 있지만, 선로 용량에 여유가 있는 곳은 민간에 개방해도 될 텐데 아쉽다"고 덧붙였다.

    철도차량 내수 시장의 안정화와 성장은 외국 진출을 위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로템 관계자는 "무엇보다 자국시장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며 "밑동이 흔들리는 데 외국에 진출해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6~7년 전부터 국제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데 중국의 매출 비중을 보면 대부분이 자국 내수 물량"이라며 "사회주의 경제 기반으로 정부 주도의 거대 내수시장이 형성돼 있고 외국업체를 상대로 국산화, 현지화, 기술 이전 등의 조건을 걸어 경쟁력을 키운 뒤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 화물열차 탈선 여파로 대전역에 멈춰선 무궁화호.ⓒ연합뉴스
    ▲ 화물열차 탈선 여파로 대전역에 멈춰선 무궁화호.ⓒ연합뉴스

    철도전문가들은 외국시장 진출을 위해선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주문한다. 특히 정책금융 지원이 절실하다는 견해다.

    현재 세계시장의 사업 수주 양상이 업체의 기술 경쟁력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국가별 총력전 양상을 띤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이 세계 시장에서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중국 정부의 정책금융이 국영 차량제작사와 짝을 이뤄 물량 공세를 펼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철도 전문가들은 "사업을 발주하는 나라 입장에서는 사업재원을 조달하는 것도 중요한 데 중국은 사업에 참여하면서 낮은 금리로 자금까지 빌려주고 있어 경쟁력에서 우위에 있다"며 "가까운 일본만 해도 철도사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보고 총리의 지휘 아래 교통운수성에 별도의 해외사업과를 두고 있는 만큼 우리도 정부 차원의 지원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