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경정예산이 국회에 꼼짝없이 발목이 잡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2일 국무회의에서 "추경을 다른 것과 연계해서 붙잡고 있지 말고 국회가 추경 처리에 속도를 내주시기를 거듭 호소한다"면서 "구조조정의 충격을 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근로자들과 타들어가는 지역 경제의 고통을 내 몸과 내 일같이 여겨달라"고 했다.
하지만 국회는 추경 심사 협의 일정도 결정하지 못한 채 정쟁만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이번 추경안에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일체 편성하지 않고 오로지 산업구조조정·일자리에 초점을 맞췄으나 야당의 생각은 다르다.
이번 기회에 밀린 숙제를 한 꺼번에 끝내겠다는 심산으로 협상 테이블에 의제를 차례로 늘리고 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2일 두 야당을 양해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간 연장과 누리과정예산을 선결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야당의 발목잡기 병이 도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어 "세월호 특조위는 별다른 성과없이 막대한 예산만 낭비하고 법정시한이 종료됐다"면서 "두 야당은 무작정 활동기간을 늘려달라고 하는 데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맞섰다.
정 원내대표는 "두 야당은 늘어난 의석수 만큼 국정에 무거운 책임을 느껴달라"면서 "경제살리기와 민생돌보기를 위한 추경에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전일 여야 원내수석부대표는 회담을 갖고 추경안 심사 일정을 잡으려 했으나 야당이 누리과정예산과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간 연장을 주장해 심사 일정을 정하지 못했다.
여야가 가장 큰 이견을 보이고 있는 대목은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간으로 야당은 지난 6월말 일몰된 활동기간연장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여당은 여야 의원과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새로운 국회 차원의 특별조사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박완주 더민주 원내수석은 "새누리당이 특조위 연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얘기하다가 이제와서 새로운 특위를 만들어서 하자고 했는데 우리는 못 받는다"고 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모두 추경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올 하반기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경기 침체가 현실화되고 이에 따른 실업이 급증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야는 추경 통과 시기면에서는 생각이 다르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20일 여야가 잠정 합의한 대로 오는 12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이달 26일에 처리해도 늦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특히 추경의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은 한결 여유롭다. 국민의당은 정부보다 먼저, 새누리당보다 일찍이 추경의 필요성을 제시하며 경제 정책 정당 면모를 보였으나 12일 통과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성식 정책위의장은 "12일에 추경을 통과하자는 말은 상임위와 예결위가 일주일 만에 날치기에 가깝게 통과시키라는 말"이라며 "8월 내내 제대로 심사해 8월 중 처리가 된다면 그 또한 빠른 추경 처리"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국민의당이 막상 추경안 논의에 미온적인 이유로 현역 의원들의 잇딴 검찰 수사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총선 리베이트 의혹으로 박선숙, 김수민 의원을 향해 검찰이 두 차례나 구속 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기각했다. 박준영 의원 역시 구속 영장이 기각됐다.
이후 국민의당은 검찰 개혁을 사실상 당론으로 정하고 "검찰이 야당에게 가혹한 칼"을 적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여야는 추경안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오는 12일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고 추경안 심사를 완료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사실상 12일 처리는 어렵게 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추경 일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야당이 의제로 올린 안건은 △임시회 일정 △조선해양 구조조정 청문회 △대법관 인사청문회 △국회 사드 대책 특위 △세월호 특조위 △누리과정 예산 등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