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 밖 야생조류서 고병원성 확인해도 검역본부 확진 없으면 이동제한 못 해지자체 정밀진단기관에 권한 넘겨야… 전문인력 부족·지자체 무관심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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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의심 신고가 우후죽순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확진 판정을 받으려면 경북 김천의 농림축산검역본부로 시료를 보내야만 해 초동대처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6일 하루에만 1건의 고병원성 AI 확진과 2건의 농가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지난 10일 전북 익산시 춘포면 만경강 수변에서 잡은 야생 흰뺨검둥오리 시료에서 H5N6형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검출됐고, 전남 해남의 산란계(알 낳는 닭) 사육농가와 충북 음성군 맹동면 용촌리의 한 오리 사육농가에서 각각 AI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
올 들어 처음으로 지난달 28일 충남 천안시 봉강천에서 채취한 야생조류(원앙) 분변 시료에서 H5N6형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검출돼 확진 판정을 받은 지 닷새 만이다. 각각의 발생·신고와 관련해 아직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AI 확진 판정 체계에 누수가 있다고 지적한다.
천안 사례의 경우 건국대에서 연구용으로 채취한 분변시료에서 고병원성인 H5 AI 항원을 검출한 건 지난 9일이었지만, 즉각적인 초동대처는 이뤄지지 않았다. 시료는 확진 판정을 위해 10일 김천에 있는 검역본부로 보내졌다. H5N6형으로 구체적인 유형이 확인돼 확진 판정이 내려진 것은 11일로 이틀이 지난 뒤였다.
그사이 충남도는 시료를 채취한 지역에 대해 이동제한 조처를 내리지 못했다. 소독하고 확진이 내려질 때를 대비해 해당하는 농가를 파악하는 등 이동제한 조처를 준비한 게 전부였다.
현재 방역체계는 AI가 농가에서 발생한 게 아니면 정부 지정 정밀진단기관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고병원성을 확인해도 검역본부의 확진 판정 이전에는 이동제한 조처를 내릴 수 없다.
농가에서 발생한 AI의 경우 확진 이전이라도 지자체 판단에 따라 예방적 살처분이 가능한 것과 차이를 보인다. 충남도 한 관계자는 "간이키트검사에서는 고병원성 여부는 확인되지 않아 살처분한 사례는 거의 없지만, 예방적 살처분도 보상이 되므로 지자체 판단에 따라 적극적인 조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전국에서 국가 지정 정밀진단기관을 둔 지자체는 4곳뿐이다. AI는 경기·충남·전남, 구제역은 경기·충남·경북이다. 이들 기관은 AI의 고병원성 여부만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인 유형 확인과 확진은 검역본부만 내릴 수 있다.
일부 지자체는 확진 판정을 지자체가 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견해다. 초동대처를 신속하게 할 수 있어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검역본부까지 시료를 옮기는 데만 왕복 수백㎞를 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도 "(신속한 대처를 위해) 확진 판정 권한을 지자체에 넘겨주는 게 맞는다고 본다"고 전했다. 다만 "지자체의 검사능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으나 정부 지원에 한계가 있고 여건이 여의치 않은 부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자체에서 토로하는 가장 어려운 과제는 전문 검사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그나마 인력을 배치하기가 수월하다는 의견이다. 충남도 관계자는 "현재 도내에는 AI와 구제역 검사인력이 각각 3명이고 공중보건의(수의사)가 각 1명씩 보조한다"며 "검사할 시료는 늘어나는 데 최소 필요 인력도 충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지자체가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투자에 인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밀진단기관으로 인정받으려면 외부 공기와 차단된 음압시설 등 일정 기준(BL3·Biological Lab level 3)을 충족하는 시설이 필요하다.
문제는 고가의 장비구매비도 부담이지만, 시설을 유지하는 데 인건비·전기료 등을 포함해 연간 1억원쯤이 든다는 점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시설비는 시·도 가축방영사업을 통해 국비를 일부 지원하는 데도 신청이 없다"며 "중앙정부 지원에 한계가 있으므로 지자체 의지가 필요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