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게 부서져 흙덩이화 한 경우 화장 제외… 편법·악용의 길 열어줘법적 근거도 없는 용어… 장사법 개정 취지 무색복지부 "현장 확인하면 돼"… 업계 "인력 부족·탁상행정"
  • ▲ 추모공원.ⓒ연합뉴스
    ▲ 추모공원.ⓒ연합뉴스

    보건복지부가 책상머리 행정으로 무연분묘에 대한 불법 화장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개장 때 유골을 화장하도록 법을 고치고선 '토괴화'(흙덩이화)란 듣도 보도 못한 용어를 가져와 예외를 인정하는 바람에 불법 화장이 만연할 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 국회와 일선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지난해 1월29일부터 개정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이 시행돼 다른 사람의 토지 등에 설치된 무연묘를 개장할 때는 유골을 화장하도록 의무화했다. 화장한 유골은 10년간 봉안당 등에 안치토록 했다. 이를 어기면 최고 3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정부가 장사법을 개정한 이유는 야산에서의 불법 화장을 막고, 사망원인을 알 수 없는 무연묘의 경우 해로운 균이나 바이러스를 없애 봉안·관리하는 과정에서 우려되는 보건위생상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법 개정 이후에도 화장 비용을 아끼려는 영세 이·개장업체의 불법 화장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장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도 많은 시·군에서 개장을 허가할 때 화장 의무화를 알리지 않아 일반 민원인은 물론 이·개장업체 종사자도 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영세 이·개장업체는 알고도 비용을 절감하려고 불법 화장하거나 화장증명서 없이 봉안증명서만 제출하고 넘어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관계자는 "아예 개장을 허가할 때 화장증명서를 가져오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안내한다"면서 "일부 민원인은 다른 지역(시·군·구)에서는 봉안증명서만 내면 된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례가 없지 않다"고 부연했다.

    개장 관련 민원이 제기되자 복지부도 지난달 20일 각 시·도에 공문을 보내 바뀐 개장 절차를 안내하고 과태료 처분 등 지도·감독을 철저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문제는 복지부가 해당 공문에서 유골이 토괴화됐으면 화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예외조항을 단 부분이다.

    업계 종사자는 이 예외조항이 법 개정 취지를 무색게 하고 오히려 불법 화장을 부채질할 거라고 우려한다. 유골을 불법으로 화장한 뒤 파쇄해 흩뿌리고서 토괴화됐다고 허위 신고할 게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건당 개장 비용이 50만~60만원이라고 할 때 화장장을 이용하면 30만~40만원이 들지만, 불법으로 하면 상당한 비용을 아낄 수 있다"며 "정부가 잘못된 예외조항을 두어 편법을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복지부가 들고나온 토괴화라는 용어도 도마 위에 올랐다.

    복지부는 땅에 묻은 지 오래돼 유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흙덩이화 됐다면 화장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다.

    하지만 유골이 잘게 부서져 흙덩이처럼 보이게 변한 것일 뿐 유골이 자연상태의 흙이 된 게 아니므로 법 개정 취지에 맞게 불로 태워 위생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토괴화라는 표현도 법적 근거가 없는 용어인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 노인지원과 관계자는 "토괴화된 유골에 관한 용어는 현행 법률에 언급되거나 정의된 말은 아니다"고 답했다. 심지어 "일부 시골에서 쓰이는 말을 사견으로 언급했다"면서 "(시골에서는) 뼈가 분해돼 자연화하다 보니 유골이 토괴화된 곳을 명당자리로 부른다"고 황당한 설명을 내놨다.

    토괴화 예외조항을 악용하는 위법 행위에 대한 복지부의 대응도 탁상행정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국회와 장묘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복지부는 토괴화 논란에 대해 시·군·구 장묘담당 공무원이 직접 이·개장 현장에 나가 토괴화 여부를 확인하면 문제 될 게 없다는 태도다.

    이에 대해 장묘업계는 탁상행정의 극치라고 지적한다. 대부분 현장이 야산인 데다 지자체 전담인력도 부족한 현실을 고려할 때 얼마나 지켜질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명백히 화장해야 하는 개장허가서조차 사후관리나 현장관리가 거의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소수의 담당 공무원이 수많은 이·개장 현장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며 토괴화 여부를 가린다는 것은 현실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