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산책] 사랑, 사랑, 사랑 by 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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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슈퍼마켓 광고가 프랑스를 강타했다. 영화감독 카티아 레브코비츠가 감독하고 로망스(Romance)가 대행한 이 3분 길이의 광고는 지난 3월 12일 앵테르마르셰(Intermarché) 페이스북 계정에 공유된 지 불과 사흘 만에 2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마지막에 로고가 한 번 나왔을 뿐, 앵테르마르셰를 이용해달라는 언급조차 없다. 사람들은 배경음악과 감독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유튜브에는 ‘앵테르마르셰 배경음악’이란 제목으로 새로 동영상이 올라왔다.
삼총사와 달타냥 같은 네 명의 청년들이 쇼핑카트에 냉동피자, 아이스크림, 도넛, 케첩 같은 온갖 ‘정크푸드’를 싣고 시끌벅적하게 계산대 앞에 도착한다. 순간 ‘달타냥’은 아름다운 계산원 아가씨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다. 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정크푸드보단 채소나 과일 등을 살 때 더 기뻐한다는 것을 눈치 챈 청년은 매일처럼 이 아가씨를 보러 가서 ‘신선 식품’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청년의 요리 실력은 나날이 늘고 처음에 비협조적이었던 친구들도 그의 요리를 돕고 즐기게 된다. 계산원 아가씨의 마음도 점점 청년에게 기울어지는 것 같이 보인다. 그 사이 마르셀 물루지의 60년대 노래 ‘사랑 사랑 사랑(L’amour L’amour L’amour)’이 말 그대로 관객의 마음을 ‘조였다 풀었다’ 한다.앵테르마르셰는 공교롭게도 ‘삼총사(Les Mousquetaires)’라는 이름의 그룹이 1969년부터 슈퍼마켓 체인을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브랜드다. 현재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 중 매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외국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이 그렇듯 앵테르마르셰 역시 단순히 소매유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급이나 생산에 관여하면서, 가끔 불가피하게 환경이나 매입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곤 한다. 앵테르마르셰는 평소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두는 것이야말로 가끔씩 찾아오는 이런 위기를 관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깨달은 듯 하다.앵테르마르셰는 광고대행사 마르셀(Marcel)을 통해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던 과일과 채소를 헐값에 판매하는 캠페인을 벌여 2014년 처음으로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에서 여러 개의 상을 받았다. 환경 문제로 구설수를 겪고, 전세계 유통업체들이 크리에이티비티가 나이키나 코카콜라와 같은 대형 제조업체 브랜드에게만 중요한 게 아님을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한 직후였다. 앵테르마르셰는 2015년에는 주스 착즙 시간을 상품 이름으로 삼은 캠페인으로, 2016년에는 소비자들의 설탕중독을 해소시키는 요구르트 상품을 개발한 캠페인으로 연속해서 칸 라이언즈에서 수상해왔다.이 필름광고는 앵테르마르셰와 고객 간의 관계를 계산원 아가씨와 그녀에게 매혹된 청년의 모습에 빗댔다. 페이스북에 올린 이 사랑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페이스북에 상대방에 양해도 없이 “앵테르마르셰님이 고객님들과 연애중’이라고 상태 업데이트를 한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고객들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아니 불평하기는커녕, 페이스북 댓글들은 아름답다, 재미있다, 눈물 났다, 장 보면서 여자를 사귈 수 있다면 당장 가겠다는 식으로 매우 긍정적이다.이 광고영상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배경음악도 큰 역할을 했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5-60년대 ‘샹송’ 가수들은 단순한 가수가 아닌 ‘공연자’였다. 이 곡을 부른 마르셀 둘루지(Marcel Mouloudji)를 비롯해 에디트 피아프나 이브 몽탕 등 전통적 샹송 가수들의 공연은 한 곡 한 곡이 하나의 일인극이었다. 샹송을 ‘공연’할 때는 정확히 가사를 전달해야 하는 것은 물론, 상황에 맞는 손동작이나 표정과 같은 연기가 필수였다. 이런 전통은 프렌치 힙합의 강세에도 불구하고 벵자망 비올레(Benjamin Biolay), 크리스토프 마에(Christophe Maé)와 같은 젊은 가수들에 의해 아직도 이어져오고 있다. 광고의 배경음악을 알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도 그 전통은 기억하기에 묘한 향수와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현대의 광고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집행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채소를 가장 싼 값에 판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더욱이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모든 것을 의심하는 데카르트적 프랑스인들에게 그런 메시지가 먹힐 리 만무하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이 꼭 냉정하고 회의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좋은 연애상대 1, 2위를 다투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앵테르마르셰 광고는 언제나 누군가와 새로운 연애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 프랑스인들의 낭만적 기질을 건드렸고, 보기 좋게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