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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최태원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또 한번 빛을 발휘했다. 불리하던 도시바 인수전을 한미일 컨소시엄이라는 깜짝 카드로 승부를 뒤집은 것.
22일 재계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의 '묘수' 덕분에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1차 입찰에서 경쟁 상대들에 비해 베팅액이 1조원 이상 부족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높았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이 직접 뛰면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약 4개월간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뇌물죄 수사로 출국금지됐던 최 회장이 4월 중순 출금이 해제되면서부터다.
일본 현지에서 도시바 관계자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판세를 살펴봤고, 협업이라는 관점에서 인수전 참여를 모색하게 됐다.
특히 일본 내에서 기술유출이라는 부정적 여론을 무마시킨다는 측면에서도 한미일 컨소시엄과 도시바 경영권 유지는 '신의 한수'로 풀이된다.
즉, 한미일 컨소시엄이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문의 지분 51%를 인수하지만, 경영권은 도시바에 그대로 두는 MBO(경영진 인수방식)를 제안한 것이다. 최태원 회장은 욕심을 내지 않으면서도 실리를 최대한 챙기는 전략으로 이번 도시바 인수전을 승리로 이끈 셈이다.
한미일 컨소시엄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미국계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탈, 일본 국책은행인 일본정책투자은행과 민관펀드인 산학혁신기구 등으로 구성됐다. 컨소시엄은 총 2조1000엔(약 21조원)을 인수금액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경쟁 상대였던 브로드컴 컨소시엄과 홍하이정밀공업(폭스콘) 등이 제시한 금액보다 2조원 가량 낮다. 하지만 일본 정부 및 도시바의 속내를 잘 파악한 것이 역전승을 거둔 요인으로 분석된다.
SK하이닉스는 SPC에 직접 지분을 참여하지 않고 3000억엔(약 3조원)을 융자하는 방식으로 지분 15%를 확보했다. 일본 정부의 부정적 여론을 피하는 최적의 방법을 택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전에서 도시바 경영권을 직접 확보하지 못했고 재무적 투자자에 불과하지만, 원천기술을 보유한 메모리 사업에 있어 기술력 강화 및 다양한 협력 등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최 회장은 지난 2012년 하이닉스 인수 때에도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수를 성공시킨 승부사다. 이제 도시바까지 품으면서 다시 한번 SK하이닉스를 글로벌 톱 기업으로 육성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편, 도시바는 지난 21일 이사회를 통해 우선협상대상자로 한미일 컨소시엄을 선정했고, 오는 28일 주주총회를 통해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도시바는 이후 실사와 구체적인 가격협상 등을 거쳐 내년 3월까지 딜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