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백화점, 5만원 이하 제품 판매량 '쑥'가성비·실속형 선물 인기… 농·수·축산업계는 '변화'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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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이 오늘로 시행 만 1년을 맞았다. 김영란법 시행 후 첫 추석인 올해 유통업계 분위기는 이전과 사뭇 다르다. 대형마트는 물론 고가 위주의 상품을 판매하던 백화점에서도 5만원 이하 선물세트의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가성비'와 '실속형' 선물세트가 주력 제품으로 자리매김한 가운데 농·수·축산업계는 직격탄을 맞으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후 달라진 추석 新 풍속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28일로 시행된 지 딱 1년,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추석 선물세트 중 5만원 이하의 제품들이 인기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에서 선물세트를 구매하려는 사람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 대형마트·백화점, 5만원 이하 제품 판매량 '쑥'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5만원 이하의 선물세트 비중이 김영란법 시행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올해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선물세트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형마트의 경우 5만원 이하 상품 비중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마트에 따르면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인 지난해 설은 5만원이하 선물세트 매출 비중이 67.1%, 같은해 추석도 69.9%에 그쳤다. 그러나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 올해 설은 72.6%, 추석은 72.9%까지 증가했다.
롯데마트도 지난해 매출 기준 70%였던 5만원 이하 상품이 올해는 80% 수준까지 증가했다.
5만원이하 선물세트가 인기를 끌면서 상품도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해 추석 홈플러스에서 판매한 추석선물세트는 1500여종으로, 이중 약 70%가 5만원 이하였다. 그러나 올해는 전체 1600여종 중 91.3%가 5만원이하 선물세트로 구성됐다.
공무원을 비롯해 공직 유관단체 임직원, 교직원, 언론사 임직원 등에게 5만원 이상의 선물이 금지되면서 법을 지키는 한도에서 선물하려는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백화점도 5만원이하의 선물세트 매출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2016년 추석 5만원이하 상품 매출 구성비는 16.4%였지만, 올해 추석은 매출 구성비가 24.3%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신세계백화점도 지난해 추석보다 5만원이하의 선물세트 판매량이 80%가량 증가하는 등 김영란법에 이후 백화점에서도 실속형 제품이 인기를 끄는 모습이다. 이는 김영란법 이후 명절 기간 백화점 매출이 떨어지면서 백화점업계에서 다양한 선물세트를 선보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영란법 시행 이후인 올해 설 롯데백화점의 매출은 직전년도보다 14.3% 급감한 4585억원을 기록했다. 김영란법에 백화점 명절 매출이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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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와 백화점은 변화한 추석 풍속도에 맞춰 5만원 이하의 다양한 선물세트를 선보여 고객 끌어모으기에 나섰다. 특히 고가의 상품과 저가의 상품을 적절하게 혼합해 판매하는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이마트는 불고기와 국거리를 각각 700g씩 담은 '노브랜드 냉동 한우 정육 세트'를 4만800원에, 롯데백화점은 법성포 굴비 10미로 구성된 '어물전 굴비세트(0.8kg)'을 5만원에 판매 중이다.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를 선택해 가격을 낮춘 상품들도 출시됐다. 롯데마트는 '국내산 돼지 갈비 찜세트(냉동·700g*3)'를 4만9000원에, 롯데백화점 역시 흑돼지인 '이베리코 돼지고기'로 구성된 선물세트를 5만원를 선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5만원 이하의 선물세트 수요가 증가해 이에 맞게 다양한 상품을 대형마트와 백화점에서 출시했다"며 "가성비를 중심으로 향후 명절 풍속도가 변화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 가성비·실속형 선물 인기… 농·수·축산업계는 '변화' 모색
김영란법 시행 후 첫 추석을 맞는 유통업계가 5만원 이하 가격대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실속형' 선물세트를 주력 제품으로 내세우며 대목 잡기에 나섰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가인 농산물과 수산물, 축산 제품들은 김영란법 시행 후 직격탄을 맞은 탓에 살아남기 위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유통업계는 올해 설, 한 차례 김영란법 후폭풍을 경험한 탓에 이번 추석은 맞춤형 제품을 다양하게 선보여 선택의 폭을 넓히는 등 비교적 안정세에 접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CJ제일제당과 동원F&B, 오뚜기, 대상, 샘표 등 주요 식품제조업체들은 선물세트 물량의 90% 가량을 5만원 이하 제품들로 선보이고 있으며 올해 추석에 큰 폭의 매출 성장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CJ제일제당의 최고 인기 명절 선물인 '스팸' 선물세트는 올 추석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된다. CJ제일제당은 지난 25일(추석 D-9일)까지 '스팸' 선물세트 320만개가 모두 출고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 추석 선물세트 출고율이 90%였던 점을 감안하면 10%P 빠른 속도다.
CJ제일제당은 명절까지 남은 기간 마케팅을 강화해 지난해 추석 대비 두 자릿수 성장한 115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전략이다. 올해는 3만원대 중가 세트를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참치캔이 주력인 동원F&B도 추석 2주전 기준, 선물세트 매출이 3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올해 추석에 거는 기대가 크다. 올해 동원은 추석 선물세트 200여종을 선보였는데 이 중 95%가 5만원 이하다. 주력 제품은 동원참치와 리챔 등으로 구성한 5만원 이하의 실속 복합세트이다.
주류 업계도 5만원 이하 추석 선물세트를 속속 선보였다.
롯데주류는 '백화수복', '설화' 등 전통주 선물세트를 1만~3만원대에 내놓고 '설중매'는 1만~2만원, '대장부'는 2만원대, 국산 위스키인 '스카치블루'는 5만원 이하의 선물세트를 내놨다. 하이트진로는 목통숙성 프리미엄 소주 '일품진로' 2병과 스트레이트 잔 2개, 온더록스 잔 2개로 구성한선물세트를 한정판매한다. 가격은 2만9800원.
디아지오코리아는 '조니워커 더블블랙'(4만9000원대)과 '조니워커 블랙 레이블'(3만6000원대), '윈저 17년'(4만2000원대), '윈저 12년'(2만8000원대), '더블유 시그니처'(4만4000원대), 450ml), '더블유 아이스'(2만6000원대)를 선보였다.
페르노리카코리아는 '발렌타인 12년산' 세트(4만원), '발렌타인 마스터스'(4만8000원), '발렌타인 파이니스트' 세트(2만7500원), '시바스 리갈 12년'(4만원)을 준비했고 골든블루는 '골든블루 사피루스'(2만9800원)와 '골든블루 다이아몬드'(4만4800원)를 고급 하드케이스에 담아 선보였다.
창고형 와인할인점 데일리와인은 이번 추석에 와인 2병을 고급케이스에 담은 선물세트를 1만5900원부터 판매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전년 대비 약 40% 가까이 매출이 뛰었다.
와인유통업체 아영FBC가 올해 추석 직전에 진행한 백화점 와인장터 매출이 전년 대비 20% 신장했다. 아영FBC는 추석 명절을 겨냥해 5만원 이하 와인 선물세트 비중을 70%까지 확대했으며 추석 2주전 기준 매출이 전년 대비 10%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설 김영란법 영향으로 선물세트 매출이 급감할 것으로 우려했지만 생각보다 타격이 적었고 이번 추석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와 살충제 계란 논란이 최대 변수로 꼽히긴 했지만 다행히 추석을 앞두고 계란 소비량도 회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 15일부터 21일 계란 평균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6.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롯데마트에서도 이 기간 계란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5% 신장했다. 살충제 계란 파동 이후 소비량이 급락했지만 명절을 앞두고 점차 정상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영란법 직격탄을 맞은 농·수·축산물 등 비교적 고가 제품들은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우와 굴비, 과일 등은 김영란법 상한선인 5만원에 맞춰 과감하게 양을 줄이면서 몸값을 낮추고 김영란법 규제를 받지 않는 개인 고객을 타깃으로 고가의 프리미엄 선물 세트를 선보이는 등 투트랙 전략을 짰다. 추석 연휴와 과일 수확철이 맞물리면서 5만원 이하로 책정된 당도높은 사과·배 선물세트도 주력 제품으로 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추석에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어느 곳에서든 5만원 이하의 한우, 굴비, 과일 선물세트를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됐다"며 "김영란법이 불과 1년 만에 바꿔놓은 풍경"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농·수·축산물 등은 김영란법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 품목으로 꼽히는데 두 손 놓고 있기 보다는 규제에 맞춰 발빠르게 변화를 꾀하며 가격대를 다양화하는 전략으로 대응했다"며 "다만 이러한 대응책이 전체 매출 감소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라고 전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김영란법 시행 1년을 맞아 화훼 도소매업, 농축수산물 도소매업, 음식점업 등 관련 중소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영향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 회사의 절반 이상인 56.7%가 "시행 이전 1년과 비교해 매출이 줄었다"고 답했다.
이들 기업의 매출은 전년 대비 평균 34.6%가 줄었다. 전반적인 기업경영에 대해선 60.0%가 "어렵다"(매우 어렵다 31.7%, 다소 어렵다 28.3%)고 응답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내수 경기를 활성화하고 국내 농·수·축산업계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김영란법을 개정해야한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김영란법을 보완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고 자유한국당은 김영란법 대책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고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김영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김영란법 개정안도 국회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도 지난 25일 취임 100일을 맞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영란법의 '3·5·10(음식물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조항을 '5·10·5'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