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 철강재 관세 부과 명령에 서명하면서, 규제안이 발효되기까지 남은 15일 이내 한국이 제외국가에 포함될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린다. 이번 제재가 한국의 경우에는 강관 제품에 타깃을 맞춰졌기에, 향후 제외국에 포함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9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오후(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철강 및 알루미늄 업계 종사자들이 자리한 가운데 수입 철강재 25%, 알루미늄에 10%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규제안은 서명일로부터 15일 후 발효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을 앞두고 있는 캐나다와 멕시코는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향후 두 국가와의 나프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면제권을 행사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향후 이 두 국가 외에는 모든 수입 철강재에 25%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 다만 관세 명령이 발효되기 전까지 일부 국가에 대해서는 면제권을 부여할 수 있다고 밝혀, 많은 국가들이 치열한 물밑작업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 부과가 임박하자 우리 정부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에 급파,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 한국을 제외시켜 줄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은 미국 동맹국 중 유일하게 2안인 최소 53% 관세 부과 대상국에 포함이 돼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린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이유로 강관의 수출 급증을 꼽는다. 미국 철강사들이 값싼 중국산 강관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하자 반덤핑 조치로 중국산을 막았더니, 그 틈새로 한국산이 들어왔다는 설명이다.
실제 2010년 이후 한국의 대(對)미국 철강재 수출은 꾸준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철강협회 수출입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0년 209만톤이었던 수출은 2011년 292만톤까지 증가했으며, 2012년에는 362만톤까지 치솟았다. 2013년과 2014년을 거쳐 571만톤까지 늘었던 대미 철강재 수출은, 이후 반덤핑 조치가 취해지면서 이듬해 395만톤으로 줄었다. 이후에는 300만톤 중후반을 유지하며 크게 늘어나고 있지 않다.
2010년에서 2015년까지 대미 철강재 수출 증가는 강관이 이끈 것으로 조사됐다. 2010년 100만톤에 그쳤던 대미 강관 수출은 2011년, 2012년을 거치며 170만톤까지 늘었다. 증가세는 꾸준히 지속돼, 2014년 한국의 대미국 강관 수출은 266만톤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미국 상무부의 강한 규제로 2015년 111만톤까지 쪼그라들었고, 2016년 역시 118만톤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내 강관 수요 급증으로 다시 대미 강관 수출이 202만톤까지 늘어나면서, 미국이 무역확장법이라는 고강도 제재안을 내놨다는게 통상 전문가의 설명이다.
철강 통상부문에서만 20년 이상 종사한 이 전문가는 "미국 시장이 우리 시장은 아니다. 가져다 놓은 밥상이라 생각하면 안된다"면서 "자국 업체들이 초토화 되지 않는 선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데, 중국산이 줄어든 틈을 타 한국이 밀고 들어갔다. 그러니 미국에서는 한국을 '리틀 차이나'라고 여길 수 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무리 한국이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트럼프 행정부 태도로 볼 때, 향후 제외국에 포함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며 "미국이 지나친 점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일정 부분 이 사태를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부당한 수입규제 조치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국산 철강재에 대한 관세 경감 또는 면제를 위해 미국무역대표부(USTR)측과 관련 협의를 조속히 진행할 예정이다. 동시에 한미 통상당국간 협의와 병행해 주요국과의 공조를 통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수출선 다변화, 내수 진작, 철강재 고부가 가치화 등 철강산업 경쟁력 방안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협력국에 한해 철강재 공급과잉이나 환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면 관세 부과에서 면제시킬 수 있다고 밝혀, 정부는 이 대안 마련을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당장 25%라는 관세가 부과된 것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휘령 세아제강 부회장은 이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민관합동대책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번 조치로 철강업계가 많이 힘들고 타격이 크다. 상당히 안타깝고 아쉽다"고 말했다.
정탁 포스코 부사장 역시 "국내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 문제를 정부와 같이 풀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한국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에게 관세가 일률적으로 부과됐기에 최악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관세 조치가 일률적으로 적용되는거라, 미국 시장내에서 한국산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면서도 "다만 한국산이 많이 팔리면 연례재심과 같은 반덤핑 판정에서 고율을 맞을 수 있기에 리스크는 항상 존재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