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선제안으로 농심 '맛있는 신라면의 소리' 광고 제작소비자 분석·광고 배치 자동화 등으로 차별
▲ '맛있는 신라면의 소리(The Sound of Delicious Shin Ramyun)' 유튜브 광고 화면 ⓒ농심 미국법인
'IT 공룡' 구글이 농심과 손을 잡고 해외 신라면 광고를 제작하자, 광고대행사가 설 곳이 점점 줄어든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전통적인 광고 집행 과정인 광고주→광고대행사→미디어렙사→매체사로 이어지는 구조가 점차 붕괴되는 추세다.
광고주가 광고대행사를 건너뛰고 바로 미디어렙사나 매체사에 바로 광고를 집행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광고대행사인 영국 WWP의 가장 큰 광고주인 유니레버와 프록터앤갬블(P&G)은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매체사들과 손 잡고 직접 광고를 제작하겠는 뜻을 내비쳤다. 이로 인해 지난해 8월 23일(현지시각) WWP의 주가가 하루 만에 11%나 폭락했다. 이는 18년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한 것이다.
심지어 매체사에서 광고주의 문을 두드려 광고를 제작하는 경우도 생겼다. 글로벌 최대 인터넷 기업인 구글이 지난해 말에 만든 '맛있는 신라면의 소리(The Sound of Delicious Shin Ramyun)' 광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광고는 구글이 농심에 먼저 공동 제작을 제안해서 구글 유튜브 영상제작팀이 만들었다. 일반적인 광고대행사에 비해 구글의 광고 제작비는 훨씬 적게 들었다는 후문이다.
비용을 적게 들여 제작한 광고인데도 반응은 뜨거웠다. 지난해 12월20일 농심 미국법인 공식 유튜브에 첫 공개된 '맛있는 신라면의 소리'는 16일 현재 조회수 536만회를 넘어선 상태다.
광고대행사들과 달리, 구글은 크리에이티브가 아닌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광고를 제작했다.
구글은 검색 서비스를 통해 얻은 막대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맥락을 파악했다. 구글이 신라면 광고에서 소리를 강조한 것도 관련 검색 데이터에서 얻어낸 통찰이다.
구글은 미국 소비자들이 라면을 먹는 소리에 반응한다는 것에 착안해 신라면 광고를 제작했다. 미국에서는 뜨거운 면 요리가 거의 없기 때문에 소리를 내지 않는 게 에티켓이다. 라면은 뜨겁기 때문에 '후후' 불어서 먹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 미국인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구글은 적절한 시점에 광고 영상을 자동적으로 배치하는 방식까지 갖췄다. 구글은 지난 21일 자사의 애드센스에 구글 인공지능(AI) 머신러닝 기술을 사용한 '자동 광고' 서비스를 선보였다. AI가 이용자 환경에 맞춰 자동으로 웹페이지에 광고를 배치하고 최적화하는 서비스다.
광고업계에서는 광고대행사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싹트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금 시대는 광고대행사가 매체사나 광고주보다도 뒤처지기 쉬운 환경에 처했다"며 "디지털 네이티브가 아닌 광고대행사들이 불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위기 속에서도 희망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인공지능은 '왜'를 분석하지는 않는다"며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하는 것보다는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