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밖에 차대고 도보 배송… 기사 "지옥이 따로 없다" 입주자 "차 높이 낮춰 지하로 다녀라"… 기사 개인 비용 부담, 업무환경 열악해져 어려워
  • 경기도 다산신도시가 '택배 갑질' 논란으로 몸살을 겪고 있다.

    논란은 한 네티즌이 올린 게시물에서 시작됐다. 다산신도시 거주자가 올린 해당 글엔 ‘택배 차량 통제 협조 안내’라는 제목의 안내문이 첨부돼 있다.

    안내문에는 “우리 아파트는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위해 지상 차량 통제를 시행하고 있다”면서 “(차량 출입 통제로) 택배기사가 정문으로 물건을 찾으러 오라고 한다면, ‘제가 왜 가죠? 그건 기사님 업무 아닌가요?’라고 응대하라”고 적혀있다.

  • ▲ 다산신도시 아파트 내에 게시된 택배차량 통제협조 안내문 ⓒ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 다산신도시 아파트 내에 게시된 택배차량 통제협조 안내문 ⓒ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해당 아파트는 ‘차 없는 아파트’를 위해 지하주차장에서만 차량 통행을 허용하고 있다. 다산신도시 일대 아파트 지하주차장 높이는 약 2.3m 정도다. 현재 주차장 법은 아파트 지하주차장 최소 높이를 2.3m로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높이 2.5~2.7m의 택배차는 진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단지 내 차량 진입과 지하주차장 이용이 불가능하자 현재 기사들은 손수레를 이용해 걸어 다니며 택배를 배송하고 있다. 부피가 크고 무거운 짐을 일일이 끌고 다녀야 하는 탓에 기사들에겐 지옥이 따로 없다.

    택배사 관계자는 "해당 지역에서 근무 중인 택배기사들이 큰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면서 ”입주자 대표 측에선 저상차량 도입 등을 제안했지만 이 방법도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입주자 측은 택배기사가 차량 높이를 2.3m 이하로 개조해 지하로 통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택배기사는 각 대리점과의 계약을 바탕으로 하는 개인사업자로, 업무에 개인 차량을 활용하고 있다. 차량 개조 시에도 자비를 들여야 하며 일부 지역만을 위해 바꾸긴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현재 2.5~2.7m의 차량 높이를 낮추면 근무 환경이 열악해진다는 주장도 있다. 차량 높이를 2.3m로 낮추면 용량도 줄어들고, 허리를 굽히는 등 작업 자세도 나빠진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기사 입장에서는 비용을 들여 작업 환경을 나쁘게 만드는 셈이다.

    아파트 거주자 간 의견도 분분하다. 단지 내 차가 없어 아이들이 뛰놀기 좋다는 의견이 있는 한편, 배송지연과 직접수령 등으로 불편을 겪고 있다는 거주자도 많다. 이를 바라보는 네티즌들은 “거주자들이 택배를 안 쓰면 될 일”, “각 사에서 배송 보이콧을 해도 되는 상황”이라며 입주자 측을 비판하고 있다.

    ◇ "택배기사는 노예가 아닙니다"… 빈번한 신도시, 신축아파트 '배송 대란'

    배송 차량 통행금지 관련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5년 세종시 한 아파트에서는 입주민 측이 차량 통행을 금지하자 기사들이 배송을 거부했다. 해당 지역의 배송을 맡은 4곳의 택배사는 상자에 ‘반송 사유 스티커’를 붙여 택배 발송자에게 물건을 돌려보냈다.

  • ▲ 2015년 세종시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차량통행금지 갈등으로, 각 택배사 기사들은 반송스티커를 붙여 물건을 돌려보냈다. ⓒ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 2015년 세종시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차량통행금지 갈등으로, 각 택배사 기사들은 반송스티커를 붙여 물건을 돌려보냈다. ⓒ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당시 문제가 됐던 아파트는 입주자와 택배사 간 협의로 갈등을 해결했다. 하지만 전국 곳곳의 신도시와 신축아파트에선 배송관련 갈등이 여전하다.

    현재 다산신도시 아파트 입주자 측과 택배 대리점은 해법 마련을 위해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일부 지역에서 시행 중인 실버택배 등이 대안으로 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버택배는 아파트 단지 단위로 물류 차를 받아, 인근 거주 노인들이 각 가정으로 단거리 도보배송을 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택배업계는 이번 논란을 통해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축아파트와 신도시에서 배송관련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만큼, 이를 해결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 택배 시장 규모는 23억 상자로, 국민 한 명당 매주 1개 이상의 택배를 받고 있는 꼴”이라며 “시장규모와 일상생활 밀접도에 비해 배송기사에 대한 배려가 턱없이 부족하다. 신축아파트 설계 시 배송차량 높이를 반영하지 않고 이에 맞추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신축아파트 설계 시 각 동으로 연결되는 물류차량 전용 통로를 만들거나, 물류차 높이를 주차장에 반영해야 할 것”이라며 “국토교통부, 건설사 등 관련 기관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제도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