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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발 고속철도(SRT) 출범 전에 서울역에서 SRT, 수서역에서 KTX가 출발할 수 있게 노선 내 완전경쟁 체제를 도입하자는 전문가 의견이 제시됐지만, 국토부와 코레일 등의 미온적인 반응으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당시 경쟁을 꺼려하던 코레일은 사정이 달라져 철도기관 통합 논의가 시작되자 이제는 현재의 SRT 운행이 수서역 독점 체제여서 경쟁 자체가 허울이라며 말 바꾸기를 하고 있어 눈총을 사고 있다.
경쟁을 싫어하기는 SR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선 지금도 노선 내 경쟁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견해다. 하지만 SR은 수서역에서 KTX가 출발하는 것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12일 철도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SRT 공식 출범 이전에 국내 철도·교통 전문가 사이에서 노선 내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서울역에서 지금의 SRT, 수서역에서 KTX가 출발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철도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교통전문가 사이에서 고속철 완전경쟁체제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코레일이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2012년쯤 같은 노선 안에서도 경쟁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었지만, 주 관심사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른 철도교통 전문가는 "공식적인 안건으로 검토되진 않았으나 일부 전문가가 (노선 내 경쟁) 의견을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의제화하진 않았으나 이야기는 있었던 거 같다"며 "(노선 내 경쟁은) 실무자들에겐 파급효과가 큰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당시는 초점을 두어 다루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독점 체제에 있던 코레일이 철도 민영화 논란 속에 수서발 고속철 출현을 반대하던 터라 논의를 구체화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는 설명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일부에서 완전경쟁 의견이 있었을 순 있다. 다만 당시 쟁점은 (수서발 고속철도가) 생기느냐 여부였다"며 "코레일 반대보다 국토부가 추진 의사가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일부 전문가의 노선 내 경쟁 제안이 새삼 눈길을 끄는 것은 코레일이 SR과 통합을 주장하며 그 근거로 지역독점 문제를 거론하고 있어서다. 코레일은 현재의 철도경쟁이 지역독점에 기반을 두고 있어 허울뿐이라며 통합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지금도 노선 내 완전경쟁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열차 투입 편수나 운행횟수는 적을지라도 승객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다.
교통분야 한 전문가는 "핵심은 경쟁의 방식이나 구조가 아니라 (코레일이) 경쟁을 할 용의가 있느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운행횟수가 적어도 서울역에서 SRT와 KTX가 일정한 시차를 두고 경쟁한다고 가정하면 승객으로선 출발시각과 가격, 서비스 질 등을 따져 열차를 골라 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수서역에서도 마찬가지"라며 "가령 15분 간격을 두고 KTX와 SRT가 출발한다면 승객은 일찍 출발하는 열차 편을 이용할지 좀 늦더라도 싸고 서비스 좋은 열차를 탈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다른 철도교통 전문가는 "(코레일은 허울뿐인 경쟁이라지만) SRT 도입 효과는 분명 있고 승객 처지에선 좋은 것"이라며 "코레일이 서울·수서역 교차 출발을 꺼리는 이유는 같은 장소에서 요금이 차이 나는 게 싫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역에서 SRT가 운행하면 요금인하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이어 "코레일은 (일반열차 운행에 따른) 부담과 적자를 호소하는데 SR과 통합만이 유일한 해법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노선 내 경쟁을 꺼리기는 SR도 매한가지다. SR 관계자는 노선 내 경쟁에 대해 "극단적인 경쟁 신봉자들의 의견"이라며 "승객에게 최소한의 선택권을 주려면 열차 편수가 너무 적으면 안 된다.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면 누가 타겠나. 코레일이 (서울역) 운행횟수를 줄이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철도업계 일각에선 SR의 반대 배경에는 알짜노선인 수서역에 KTX가 들어와 수익을 갉아먹는 게 싫어서라는 분석이 깔렸다고 해석한다.
SR 다른 관계자는 "여러 전제조건이 있지만, (승객 처지에선) 완전 경쟁체제가 맞다"며 "다만 SR로선 (열차 추가 투입 여력이 있다면) 서울역 출발보다는 전라선, 경전선 진입이 1차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