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론 다시 수면 위로… 철도노조 여론몰이 정황도양 기관 새 수장 찾기 맞물리면서 관심 더욱 커져전문가 "철도 미래비전 고민할 때…정치쟁점화 안돼"국토부 "노조대표 포함 거버넌스 구성해 공정성 확보"
  • ▲ KTX산천-SRT.ⓒ연합뉴스·SR
    ▲ KTX산천-SRT.ⓒ연합뉴스·SR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로 접어들면서 철도업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중국발 코로나19(우한 폐렴) 장기화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철도노조를 중심으로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에스알(SR) 통합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어서다. 일각에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철도노조가 현 정부에 청구서를 내밀면서 통합론을 다시 정치쟁점화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30일 철도업계에 따르면 잠잠하던 코레일과 SR 통합론이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관련된 언론보도가 속속 나오면서 업계에서도 다시 관심이 커지는 모습이다.

    코레일과 SR 수평통합은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 2017년 5월 코레일 노조인 전국철도노동조합과 정책협약서를 맺었다. 협약서에는 '경쟁체제란 이름 아래 진행된 철도 민영화 정책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코레일과 SR의 통합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한다. 문 대통령은 당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도 정책연대 협약서를 맺었다. 협약서에는 문 후보가 당선되면 재임 기간 정책협약 12대 과제를 이행한다고 돼 있다. 12대 과제에는 공공기관의 자율과 공공서비스 강화 관련 조항에 '코레일과 철도공단을 통합해 양 기관의 유사·중복업무에 따른 재정 낭비를 해소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당시 철도업계 안팎에선 이를 사실상의 철도청 부활 논의로 받아들였으며, 노무현 정부에서 개혁을 이유로 분리했던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려는 이율배반적인 야합이란 지적도 적잖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토교통부는 통합 논의를 위해 인하대 산학협력단에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산업 구조 평가'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하지만 연구진의 전문성 부족과 코레일에 유리한 설문조사 등이 문제로 지적되면서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다가 2018년 말 강릉선 KTX 탈선 등 철도 사고가 잇따르면서 용역이 중단됐다. 국토부는 철도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다루는 제4차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을 수립해 철도 통합 문제를 결론 내겠다는 태도다.
  • ▲ 국토부.ⓒ연합뉴스
    ▲ 국토부.ⓒ연합뉴스
    최근 코레일·SR 통합론이 다시 불붙은 배경에는 국토부의 연구용역이 오는 11월 완료될 예정인 것과 무관지 않다는 의견이다. 다만 일각에선 철도노조가 일찌감치 여론몰이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견해도 제기된다. 철도노조가 문재인 정부에 대선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청구서를 제출하면서 혹여라도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경우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통합에 유리한 쪽으로 논의를 쟁점화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코레일 한 관계자는 "최근 언론을 통한 통합론 이슈화 이면에 철도노조가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들린다"고 귀띔했다. 철도업계 한 관계자는 "(국토부 연구용역의 경우) 용역이 11월에 끝난다는 것이지 그때 국토부가 최종 결론을 꼭 발표한다는 얘기는 아니다"고 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결론이 나거나 아예 결과 발표가 미뤄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는 얘기다. 철도노조가 여론몰이를 통해 통합론 군불때기에 나선 배경으로 풀이된다.

    공교롭게 코레일과 SR 모두 새로운 사장 모시기에 나선 상황이어서 통합론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SR과의 통합에 관심이 큰 것은 코레일 노조뿐 아니라 경영진도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SR의 지위가 준시장형 공기업으로 격상하면서 코레일의 SR 사장 추천권이 사실상 사라졌지만, 코레일 경영진은 여전히 SR 경영진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한다. 최근 코레일 사장 공모에 코레일·SR 분리 운영을 지지해온 A씨가 지원서를 낸 것으로 확인돼 눈길을 끄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지 않다.

    최근 임대 사옥을 옮긴 SR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출범 이후 줄곧 통합 논란에 시달려온 데다 공기업으로 신분이 격상된 이후에도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어서다.

    일각에선 철도노조가 코로나19 극복과 경제 회복에 힘을 모아야 할 때 통합론을 정치적으로 쟁점화하는 데 혈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철도분야 한 전문가는 "철도산업 재구조화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 단순히 합친다 분리한다가 중요한 게 아니다"면서 "어떻게 하면 기업은 더 잘 되고 국민을 더 편하게 할 것인가 미래 비전을 고민해야 할 때다. 당장의 이해관계에 발목이 잡혀 이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 급급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코레일-SR 통합 등 철도 구조개편과 관련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코레일·SR 노조대표를 포함한 거버넌스 분과위원회를 구성했으며 분과위에서 최종 결론을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