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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한달 앞두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겪게 될 삶과 근무환경의 변화를 미리 살펴본다. 소득 감소와 고용 불안 등 부정적 영향도 예상되고 있지만, 워라밸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기대반 우려반이 공존하고 있는 곳도 있다. 주52시간 시행이 가져올 각 분야별 변화를 기획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어느덧 시계를 보니 저녁 9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오늘도 회사에서 마무리하긴 힘들다. 서둘러 짐을 싸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컴퓨터를 켰다.
달력을 보니 벌써 10월 중순이 다 돼 간다. 주 52시간 근무 시행에 들어간지는 이미 100일 넘었다. 그간 연구소에서는 여러가지 변화가 생겼다. 밥먹듯이 하던 밤샘은 사라진지 오래다. 퇴근시간인 오후 6시가 넘어가면 모두들 시간 계산하느라 바쁘다. 되도록 근무시간내 일을 끝내려 하지만, 연구직종이라는 특수한 환경탓에 쉽지 않다. 주말 역시 정말 급한 일이 생긴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근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이럴땐 디데이에 크게 쫓기지 않는 선진국들이 부럽다. 해외 일부 국가에서도 주 52시간 근무와 비슷한 제도를 시행 중에 있다. 그들은 연구원이라 해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미련없이 자리를 뜬다. 그렇기에 연구결과를 내놓는 디데이가 밀리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특히 나같이 세자녀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느끼는 부담감은 막중하다. 무엇이 문제일까를 생각해봤다. 이건 결국 구조적 문제다. 정해진 시간내 최대한의 결과치를 내놔야 하는 연구직종의 구조적 변화가 없이는 주 52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니 시간은 이미 10시가 넘었다. 애들은 다 잠들었고, 와이프는 오늘도 집에서 밤샘이냐고 투덜댄다. 그래도 내가 열심히 해야 이들을 먹여살릴 수 있기에 오늘도 힘을 낸다.
7월 1일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이전 사무실에서 하던 야근을 집에서 한다는 점이다. 물론 나만 그런것은 아니다. 연구소 동료들 대부분 집에서 밤샘작업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일을 하는 시간은 똑같은데 장소만 달라졌을 뿐이다. 회사에서 집으로.
연구원이라는 직업이 이렇게 해서라도 결과치를 만들어 내야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다 던지고 미련없이 자리를 뜨는 일부 직장인들이 부러운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달에 계획된 보고서는 총 네개다. 하나는 거의 마무리가 돼 가지만 나머지는 손도 못대고 있다. 지난해 인사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기에 올해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연구소에서 일하면 더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지만, 지금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포함 야근이 허용된 시간은 12시간 뿐이다. 집에서 처리할 수 없는 일도 있기 때문에, 정말 급한 일에만 그 시간을 쓰려 한다. 모두가 잠든 집에서 야근할 땐, 개인 사무실을 하나 얻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