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업계 최초로 주 35시간 근무제로 전환한 신세계의 변화 주목9to 5제, PC 셧 다운제, 사무실 전체 소등 등 적용사내 피트니스와 사내 식당 이용률 증가, 업무 집중에 노력
  • ▲ PC 셧다운제. ⓒ신세계그룹
    ▲ PC 셧다운제. ⓒ신세계그룹
    본지는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한달 앞두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겪게 될 삶과 근무환경의 변화를 미리 살펴본다. 소득 감소와 고용 불안 등 부정적 영향도 예상되고 있지만, 워라밸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기대반 우려반이 공존하고 있는 곳도 있다. 주52시간 시행이 가져올 각 분야별 변화를 기획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대한민국 대기업 최초이자 유통업계 최초로 주 35시간 근무제를 선언한 신세계그룹은 국내 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로운 변화에 내부 진통이 있을 것으로 우려 됐지만 시행 초반부터 직원들이 높은 만족도를 보이며 빠르게 안착해가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 아무개 부장의 변화된 일과를 통해 주 35시간 근무제를 들여다 본다. 
  • ▲ 집중 근무 시간에 텅 빈 휴게 공간. ⓒ신세계그룹
    ▲ 집중 근무 시간에 텅 빈 휴게 공간. ⓒ신세계그룹
    신세계백화점 본점 점포 패션팀에서 근무해온 지 언 10여년이 넘었다. 시장 트렌드와 소비에 민감한 업종이다 보니 종종 야근하는 일도 많았고 한시도 바쁘지 않은 날이 없없다.

    그런데 올해 초 회사에서 주 35시간 근무제를 발표하면서 앞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뜻으로 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이 있는 회사 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정말 바뀔 수 있을까.

    사실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다.  일은 쌓여있는데 근무시간을 줄이면 그 일은 도대체 누가 한단 말인가. 그래도 야근이 없어진다니 일단은 기뻤다.

    주 35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초기, 사무실에 결재판이 사라졌다. 팀원들의 불필요한 자료 작성을 없애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간 주단위, 월단위로 정기적으로 만들었던 다량의 문서를 최소한의 영업 현황만 담은 수치나 표로 대체했다. 보고 자료가 사라지면서 정기적인 회의도 사라졌다. 문서 대신 각자 구두 보고만 주고받았다.

    자료를 만들었던 시간들은 브랜드 협력회사들과의 협업을 위한 미팅을 하거나 매장의 고객 대면 업무로 채워졌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다 보니 오히려 업무에 대한 집중도는 높아지는 것 같았다. 퇴근 이후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늘어난다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팀원 모두가 근무시간에는 오늘 할 일을 집중력 있게 마무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점심시간 풍경도 달라졌다. 근무시간이 단축된 만큼 업무 집중을 위해 11시 30분부터 2시까지 자유롭게 운영되던 점심시간을 12시에서 1시로 통일했다. 외부 식당보다는 사내 식당을 더 자주 이용하게 됐다.

    늘 꽉 차 있던 회의실 예약도 수월해졌다. 근무시간 개편 후 회의 1건별 오전 3시간 혹은 오후 4시간씩 잡혀있던 회의시간이 1시간으로 감소하면서 회의실 사용이 여유로워진 것이다.

    일주일에서 혹은 열흘 전에는 예약해야 쓸 수 있던 회의실이 이제 회의 당일에도 바로 쓸 수 있게 됐다.

    협력회사와 함께 쓰는 EDI(Electronic Document Interface) 전자 문서시스템도 대대적으로 개편됐다.

    그간 바이어들은 백화점 내 영업을 위한 입점 계약서만 연간 10만여건을 작성하고 해당 팀장들 역시 10만여건의 결재를 일일이 해야 했다. 신규 거래처 보다는 기존 거래처의 갱신 계약이 많아 사실상 절차상 해야만 하는 단순 업무였다.

    그런데 이제는 100건까지 묶어서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고 협력업체 수수료율, 계약기간 등 반드시 확인해야 할 계약 정보를 하나의 표로 보여주는 시스템이 추가됐다.

    결재자 역시 100건의 계약서를 한번에 일괄 결재할 수 있게 됐다. 3주 안팎으로 꼬박 야근해야 처리되던 10만여건은 이제 야근 없이 3일이면 충분하게 됐고 계약서 작성에 드는 시간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매일 오후 5시 20분이 되면 컴퓨터가 강제로 종료되는 PC 셧다운제가 시행된다. 5시 30분에는 사무실 전체가 소등 돼 야근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됐다. 컴퓨터가 꺼지기 전까지 정해진 업무를 마쳐야 한다는 책임 의식이 생기면서 업무 시간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

    물론 근무 시간이 짧아진 데 따른 업무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요즘은 매일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내고 있다. 그간 가족들과 자주 시간을 보내지 못해 미안했는데 요즘에는 매일 저녁을 함께 보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최근에는 헬스클럽을 등록해 저녁 운동도 시작했다. 다른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은 부럽다는 말을 건네곤 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춘다는 회사의 공표에도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정말 신세계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모든 직장인들이 행복하고 건강한 워라밸을 누릴 수 있도록 많은 회사들이 변화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