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담도 없던 환자 간이식 수술 후 계획적 임신·출산 성공 소아외과·외과·내과·간이식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의료진 협진
  • ▲ 간이식 후 임신·출산에 성공한 박혜령 씨 가족과 이대목동병원 의료진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홍근 간센터 교수, 박혜령 씨, 박혜령 씨 남편, 박미혜 산부인과 교수) ⓒ이대목동병원
    ▲ 간이식 후 임신·출산에 성공한 박혜령 씨 가족과 이대목동병원 의료진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홍근 간센터 교수, 박혜령 씨, 박혜령 씨 남편, 박미혜 산부인과 교수) ⓒ이대목동병원

    “너무나 사랑스러운 존재여서 영어 ‘러블리(Lovely)’를 줄여서 아이의 태명을 ‘블리’로 지었어요. 이렇게 가슴에 안고 있으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아요”

    박혜령 씨(35세, 여)와 그의 남편은 갓 태어난 딸을 바라보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신생아 담도폐쇄증으로 카사이 수술을 받고 5년 전 간이식을 받은 박 씨는 지난 8월3일 어렵게 얻은 딸을 출산했다. 이대목동병원의 소아외과, 이식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소화기내과 등 의료진의 다학제적 협진과 헌신 덕분이다.

    박 씨는 35년 전 출생 후 얼마 되지 않아 황달 증상을 보여 지금은 이대목동병원과 통합된 이대동대문병원에서 신생아 담도폐쇄증 진단을 받았다.

    신생아 담도폐쇄증은 간에서 만들어지는 담즙이 배출될 통로인  담관이 폐쇄돼 황달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즉각 수술하지 않으면 간 기능 저하로 간이 손상되고 간경화와 간부전으로 이어져 생후 2세 이전에 사망한다.

    박 씨는 태어난 지 100일도 지나지 않아 최금자 소아외과 교수로부터 카사이(Kasai) 수술을 받았다. 성공적인 수술 덕분에 박 씨는 비교적 건강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 생활을 이어가던 박 씨는 급작스럽게 간 기능이 저하돼 다시 이대목동병원을 찾았다. 박 씨는 이미 간경변증까지 진행돼 식도 정맥류 출혈 등 합병증이 발생해 간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마침 홍근 간센터 교수는 지난 2013년 4월부터 이대목동병원에서 간이식 프로그램을 시작해 운영하고 있던 중이었다. 소화기내과에서 치료 중이었던 박 씨는 김태헌 교수의 의뢰로 간이식을 받았다.

    누나의 건강 악화 소식을 듣고 갓 군대를 제대한 동생은 흔쾌히 간 기증을 결심했다. 오누이가 나란히 누워 진행된 수술은 10시간에 걸친 대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수술 후 경과는 양호했으나 수술 후 10일째 퇴원을 앞둔 박 씨가 급작스러운 복통을 호소했다.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결과 담즙이 새어 나오는 합병증이 발견됐다.

    홍근 교수는 “당시 박씨는 퇴원을 앞두고 배액관을 모두 제거한 상태였기 때문에 제거한 부위에 배액관을 다시 넣기는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며 “다행히 최선영 영상의학과 교수와 협진으로 배액관을 삽입하고 이후 여러 번의 시술을 통해 배액관을 거치시키는 데 성공했다. 수술을 다시 하지 않고 시술만으로 박 씨의 상태가 나아져 35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상태가 호전돼 배액관을 제거한 박씨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어느날 박 씨는 장기이식센터에 청첩장을 들고 병원을 찾았다. 30여 년 전 박 씨를 안고 이대동대문병원을 찾았던 박 씨의 어머니는 결혼식장에서 만난 홍근 교수와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의 손을 잡고 아무 말도 없이 눈물만 흘렸다.

    결혼 후 다시 황달과 가려움증이 발생했다. 결국 경피경간 담도배액술을 다시 시행했고 배액관을 이전보다 오랜 기간 가지고 있기로 했다. 장기간 가지고 있던 배액관으로 담관이 자리를 잘 잡은 것을 확인한 후 홍교수는 배액관 제거를 결정했다.

    홍근 교수는 지난해 박 씨의 임신 계획에 대해 조심스레 확인한 후 박미혜 산부인과 교수에게 협진을 했다. 박미혜 교수는 산전 진찰 결과 간 기능이 유지된다면 임신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홍근 교수는 박미혜 교수의 의견을 바탕으로 곧바로 박 씨의 임신을 위해 면역억제제 등 먹고 있는 약들을 태아에 독성이 제일 적다고 검증된 약으로 바꾸고 약의 용량을 최대한 줄였다.

    홍근 교수와 박미혜 교수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간이식 환자의 임신이기에 출산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박 씨의 남편도 임신 기간 내내 마음을 졸였다. 간이식 후 임신·출산 과정은 산모 뿐만 아니라 태아에게도 위험이 될 수 있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간이식 환자들은 이식 받은 장기의 거부 반응을 줄이기 위해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이러한 약물들은 태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면역억제제 용량을 줄이면 이식 받은 간에 대해 거부반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담도합병증 등 간이식에 의한 합병증이 다시 생기면 약물 복용을 추가로 해야 하고 조영제를 이용한 영상 검사와 엑스레이 촬영도 필요해 태아가 위험할 수 있다.

    부부의 노력과 이대목동병원 의료진의 헌신으로 마침내 박 씨는 지난 8월 3일 3.5kg의 건강한 여자 아이를 출산했다. 지난 2014년 정년퇴임한 최금자 소아외과 교수는 박 씨의 출산 소식에 한 걸음에 병원으로 달려와 먼저 아이의 건강을 확인하고 박씨의 출산을 축하했다.

    홍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임기 이식 환자들에게 계획적으로 준비해 임신과 출산을 한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라며 “이번 출산의 경험은 이식을 앞두고 있는 여아와 가임기 여성 환자들에게 큰 희망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