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문제 해법은 미뤄… 공정성 시비 연구용역 반영도 논란 예고현장직원 운행중지권 실효성 의문… 차량판매자에 과도한 책임도 부여
  • ▲ 탈선한 강릉선 KTX 열차.ⓒ연합뉴스
    ▲ 탈선한 강릉선 KTX 열차.ⓒ연합뉴스
    국토교통부가 철도안전 강화대책을 내놨지만, 졸속 땜질 처방이란 지적이 나온다. 건설·유지관리 이원화 등 구조적인 문제는 손을 대지 못하고 현장 종사자만 닦달한다는 의견이다.

    ◇내년 KTX 낡은 전자부품 전면 교체

    국토부는 27일 열린 제62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철도안전 강화대책'을 내놨다. 강릉선 KTX 탈선, 오송역 단전사고 등 최근의 사고·장애 대부분이 인적과실로 발생했다고 보고 현장의 안전대책 이행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먼저 현장 직원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점검 실명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책임업무카드를 주고 유지보수·정비 기록을 사진·영상으로 남겨 관리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또 현장 직원이 업무를 수행하며 불안전 요인을 확인하면 열차운행을 중지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영업손실에 대해선 면책권을 주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처벌도 강화한다. 철도사고와 중대한 운행장애를 일으킨 현장 직원은 철도안전법으로 형사처분하고, 소속기관에 징계도 권고할 수 있게 제도화한다.

    여객승무원에 대한 불시 비상대응 훈련, 철도안전감독관의 불시점검도 강화한다.

    철도시설 관리분야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한국철도시설공단 합동으로 (가칭)철도시설합동관리단을 두어 시공단계부터 안전문제를 공동 확인하도록 개선한다. 개통 전 철도종합시험운행도 코레일과 철도공단이 합동으로 시행하고, 교통안전공단이 시험운행 결과를 확인하도록 개선할 계획이다.

    철도차량은 20년이 지나기 전에 전문기관의 정밀안전진단을 받게 의무화할 예정이다. 내년 KTX 유지보수비를 올해보다 22% 늘려 낡은 전자부품은 전면 교체한다. 안전과 직결되는 부품은 전문기술자가 정비상태를 확인한 후 운행하도록 할 방침이다.

    부품 관리를 강화하고자 현대로템 등 차량판매자가 주요 부품을 20년 이상 공급하게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부품재고, 정비이력 등 관리 시스템도 개선한다.

    코레일에는 부품검증 전담팀을 신설한다. 부품은 최저가 입찰 대신 적격심사제를 도입한다.

    승객 보호를 위해선 사고·장애 발생 시 열차 내 대기 한도, 안내방송, 구호물품 공급 등에 대해 기준을 마련하고 매뉴얼도 정비한다. 매표·환급체계를 개선하고 대체 교통수단 보상도 확대한다.
  • ▲ 오송역 KTX 사고 답변하는 김현미.ⓒ연합뉴스
    ▲ 오송역 KTX 사고 답변하는 김현미.ⓒ연합뉴스
    ◇구조적 문제해결의 걸림돌은 김현미 장관(?)

    일각에선 이번 대책에 알맹이가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철도 유지보수를 철도공단이 아닌 코레일에서 맡는 이원화 문제와 운영사인 코레일이 철도 관제권까지 갖는 독립성 부족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선 해법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건설·유지보수 이원화를 비롯해 열차 내 안전인력 부족, 정비인력·조직 적정 여부 등 구조적 불안전 요인에 대해선 감사원 감사 결과와 노사·전문가 의견수렴, 정책연구용역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개선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국토부의 태도가 미온적이라는 점이다. 우선 노사 의견을 수렴한다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코레일과 철도공단은 조직 규모부터 차이가 난다. 전통적인 강성노조로 분류되는 철도노조는 현 정부 들어 목소리가 더 커졌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의견수렴 과정에서 형평성과 객관성이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코레일과 ㈜에스알(SR)의 통합논의를 위한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산업 구조평가' 연구용역은 공정성 시비가 불거진 상태다. 연구용역을 맡은 김태승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장은 코레일 철도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었다.

    설문조사 초안이 코레일에 유리하게 작성돼 발주기관인 국토부가 초안을 반려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애초 이달 19일까지였던 연구용역 기간은 내년 2월로 늦춰진 상태다.

    연구진 구성도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김 교수 말고는 행정·회계·로스쿨 관계자로 짜졌다. 연구진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모호하다는 의견이다. 철도업계 한 관계자는 "연구용역 결과가 나왔을 때 누가 믿으려 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그동안 같은 당 소속인 오영식 전 코레일 사장의 철도청 부활론에 직간접적으로 힘을 실어주었던 게 국토부의 스텝을 꼬이게 한 원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철도산업 상하 분리는 지난 김대중 정부에서 정책을 수립해 노무현 정부에서 분리가 이뤄졌다"며 "건설·유지보수는 철도공단, 운영은 코레일이 맡는 게 이상적이나 철도노조는 7000명에 이르는 유지보수 인력을 끌어안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코레일이 관제업무를 보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 철도전문가는 "항공분야에 빗대면 항공사가 관제탑을 장악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현장 직원이 열차운행을 중지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방안도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최근 강릉선 KTX 탈선 사고에서도 이윤을 우선시하는 코레일의 안전불감증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같은 조직문화 안에서 이행력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철도차량 부품관리 방안도 졸속 대책으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국토부는 현대로템 등 차량 제작·수입판매업자가 주요 부품을 20년 이상 공급하게 의무화할 예정이다. 반면 현대로템은 지금도 운영사가 요청하면 차량 기대수명까지 부품을 공급한다는 태도다. 새로울 게 없는 대책이라는 얘기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보증기간(3년)이 지나도 부품을 요청하면 공급하고 있다. 별도로 공급된 부품의 경우 제작사가 문을 닫으면 호환되는 부품의 업체를 추천한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특히 판매자가 직접 제작·공급하지 않는 부품까지도 판매자가 20년 이상 공급을 책임지게 할 방침이다. 문제는 이들 부품 공급업체가 도산하는 경우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국토부가 차량판매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손쉽게 떠넘기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 운행중단 KTX에서 내리는 승객들.ⓒ연합뉴스
    ▲ 운행중단 KTX에서 내리는 승객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