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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형 부진에 집안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실적을 나타낸 현대자동차그룹 얘기다. 그룹 기둥인 현대차가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지며 그 영향이 계열사 전체로 퍼져나가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철강에서 완성차까지를 외쳤던 현대차그룹의 수직계열화 단점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2조4222억원에 그치며 전년 대비 47.1% 감소한 실적을 올렸다. 현대차 영업이익이 3조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0년 국제회계기준 도입 이래 처음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실적 부진에 대해 원달러 환율 하락 및 신흥국 통화 약세 심화, 원가율 상승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반면 현대차 아우격인 기아차는 전년 대비 74.8% 증가한 1조157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겉모습 만으로는 지난해 기아차가 거둔 성적이 꽤나 좋아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따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기아차는 2017년 통상임금 소송에 패소하며, 1조원 가량을 손실 처리했다. 따라서 당해 영업이익은 6622억원에 그쳤다. 2017년 영업이익이 대폭 증가한 것은 통상임금 패소 비용 반영에 따른 기저효과에 불과한 셈이다.
특히 기아차의 지난 2016년 영업이익이 2조4615억원이였단 점을 감안하면, 2017년 대폭 감소한 이후 개선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룹 내에서 세번째로 덩치가 큰 현대모비스는 그나마 양호한 실적을 나타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2조250억원으로 전년 대비 1억원 증가했으며, 매출 또한 46억원 늘은 35조1492억원을 기록했다.
현대모비스는 실적 개선에 대해 중국 로컬 브랜드와 글로벌 전기차업체로부터 16억5700만 달러의 수주를 달성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
현대제철은 지난해 1조26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간신히 1조원의 문턱을 넘어섰다. 특히 지난 2017년과 비교해서는 25% 감소하며, 수익성이 크게 나빠진 모습을 보였다. 매출은 20조7804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영업이익 감소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현대차그룹의 전반적인 부진은 현대차 실적 악화가 크게 작용했다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현대·기아차 실적이 나빠지며, 이들에게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는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또한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것.
현대차그룹이 철강에서 완성차까지를 외쳤던 수직계열화의 문제점이 지난해 실적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수직계열화는 업황이 좋을 때는 전체적인 시너지 상승 효과가 나타나지만, 그렇지 못할때는 부정적 여파가 전체에 미치는 단점이 있다. 반면 사업 다각화는 이러한 리스크를 완화시켜 준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그룹사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영업망을 구축하면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 또한 이같은 이유에서다.
사실 현대모비스와 현대제철도 영업망 확대를 위해 글로벌 업체에 자사 제품을 공급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핵심 제품인 모듈을 피아트크라이슬러(FCA) 등에 공급하고 있으며, 중국 로컬업체에 전자식 파킹브레이크를 공급하는 등 신규 수주를 중심으로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제철도 현대·기아차 중심이던 자동차강판 공급대상을 글로벌 완성업체로 확대하기 위한 방안을 지속 추진 중이다. 차강판과 같은 중요 소재를 한순간에 바꾸기엔 쉽지 않기에,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부품사가 완성차 계열사로 있으면 독자적인 생존이 어렵다. 일본 덴소 역시 토요타가 어려워지면 같은 상황에 처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라며 "무엇보다 현대·기아차가 정상화에 접어드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리스크를 줄인다는 차원에서 현대모비스나 현대제철이 수요처를 다각화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