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영향 건설현장 공사기간 연장 불가피미국, 일본 사례 벤치마킹 등 체계적 연구 선행돼야 지적 잇따라
  • ▲ 자료사진. 세종 일대 주상복합건물 공사현장 모습. ⓒ연합뉴스
    ▲ 자료사진. 세종 일대 주상복합건물 공사현장 모습. ⓒ연합뉴스
    건설현장의 공사기간 산정기준 시행이 임박했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등으로 공기연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있는 모습이다. 이에 미국,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등 공기 산정체계를 보다 체계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공공 건설공사 공기 산정기준이 내달 1일부터 시행된다.

    지금까지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준보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공기를 산정해 대부분 준공시점에 공기가 부족하거나 발주자의 불합리한 공기단축 요구 등으로 시설물 품질저하와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천재지변, 예산부족 및 토지보상 지연 등 간접적 원인으로 공기를 연장하는 경우 적정한 연장기준 없이 발주청과 시공사 사이에 간접비 분쟁 등이 빈번히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른 근로시간 단축, 기후변화, 품질·안전 관련 규정 강화 등 건설환경 변화를 반영한 공기 산정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공기는 준비기간, 작업일수, 정리기간 등을 포함해 산정하도록 했으며 대형 공사나 특정 공사는 발주청에 설치된 기술자문위원회의 적정성 심의를 받도록 하는 등 사전심사가 강화된다.

    작업일수 산정은 시설물별 작업량에 건설근로자의 충분한 휴식보장과 시설물의 품질·안전을 위해 법정공휴일 및 폭염·폭설·폭우·미세먼지 등과 같은 기후여건에 대한 작업불능일을 반영한다.

    또한 건설공사 입찰 시 현장설명회에서 공기 산정 산출근거 및 용지보상, 문화재 발굴 등 공기 영향요소를 명시하도록 해 입찰참가자에게 공기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시공사는 과학적으로 산정된 공기를 바탕으로 시공에 최선을 다할 수 있고, 공기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던 각종 안전사고도 예방이 가능할 것"이라며 "공기 변경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구분해 발주청과 시공사 간 간접비 분쟁 발생도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노조도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은 "지난해 말 공청회에서 제시된 의견대로 그동안 건설사업의 완료 가능성보다 정치적 이슈 등으로 공기를 짧게 설정하는 관행이 있었다"며 "늦었지만 공기에 대한 기준과 원칙이 마련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 ▲ 세종의 한 주상복합 건물 공사 현장. ⓒ연합뉴스
    ▲ 세종의 한 주상복합 건물 공사 현장. ⓒ연합뉴스
    다만 산정기준이 공기연장으로 이어져 건설기술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다보니 보다 합리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계약공기 미준수에 따른 불이익을 기피하는 시공사는 돌관공사가 불가피하며 이에 따라 부실공사와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주 52시간 근무로 인해 이 같은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안 그래도 공기·공사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까지 겹쳐 건설현장은 큰 혼란을 겪고 있다"며 "그나마 탄력적 근로시간제 개선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이미 해를 넘긴데다가 어떤 방안이 나올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인 만큼 건설업체들은 올해 공정계획 수립에 큰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3개 대형건설사가 최근 수행 중인 국내 건설사업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체 109개 건설사업 중 절반가량인 48개 사업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인해 기계약된 공기를 준수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인한 공기 부족 현상은 현장 운영시간의 변화가 주된 원인 중 하나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시행 후 주당 현장 운영시간은 평균 60.0시간에서 57.3시간으로 2.7시간 단축된 것으로 조사됐다.

    최수영 건산연 부연구위원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연장된 공기 산정 기준이나 돌관 작업에 따른 비용 산정 기준 등 구체적인 지침 마련이 필요하며 지침 마련 전에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기상 요인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큰 건설사업의 특성상 유연한 현장 운영이 가능토록 탄력근로제 확대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국과 일본 등 우리보다 공기 부족현상을 일찍 경험한 국가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국내 공기 산정체계를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자료를 보면 미국의 경우 1980~1990년대 공공건설의 실제 공기가 예정보다 크게 늘어나는 현상이 빈번히 발생해 사업비 증가, 시설물 적기 공급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에 미국 공공 발주기관은 구체적인 기준에 의존하기보다 공사특성과 여건에 관한 실무자의 엔지니어링 판단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해 공기를 산정하고 있다. 연방도로국의 공공건설 공사기간 산정 가이드라인도 공기 최종결정 시 실무자 판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합리적 수준의 최대기간으로 예정 공기를 산정하고, 과장 공기로 인한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공기제안형 입찰방식 또는 성과금·부성과금 계약조항을 통해 공기를 촉진하고 있다.

    일본도 2017년 국토교통성과 후생노동성이 건설산업에서의 시간 외 노동 상한 규제가 적용되면서 공공·민간을 포함한 모든 건설공사에서 근로 개혁을 위한 '건설공사에서 적정한 공기설정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공기 설정 시 주 2일의 휴무와 함께 공휴일, 연말연시, 여름휴가를 확보해야 하며 공공 토목공사에서는 준비기간과 뒷정리기간을 별도로 설정해야 한다.

    홍성호 건정연 연구위원은 "미국과 일본은 공공건설 공기 산정절차, 도구 및 모델, 프로젝트 정보체계, 전문인력 교육 등이 망라된 체계를 이미 구축해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올 초부터 근로시간 단축 적용 유예가 종료되면서 공공건설의 공기연장이 현실화될 것"이라며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공기연장의 분석기법과 공사비 증가분에 관한 체계적 연구가 실시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