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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은행 출신들의 전유물로 여겨온 금융결제원장 자리에 금융위원회 출신이 내정됐다. 1986년 금융결제원 설립 이래 한국은행 출신이 아닌 인사가 원장 자리에 오른 첫 사례다.
한국은행의 영역을 금융위가 접수했다는 뒷말이 나오는 가운데 금융위 출신들이 원하는 기관장의 트랜드가 바뀌고 있는 분위기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결제원을 비롯해 예금보험공사(예보) 등 일부 금융 공공기관과 유관기관 수장들의 출신에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먼저 예보를 보면 사장직은 그동안 금융위나 금감원 출신들이 맡아왔다. 최근 역대 예보 사장 5명의 경력을 살펴보면 △5대 최장봉(금감원 부원장) △6대 박대동(금융위 상임위원) △7대 이승우(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8대 김주현(금융위 사무처장) 등이 각각 금융당국 출신이다. 그러나 9대 사장인 곽범국 전 사장부터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바뀌었다. 위성백 현 사장도 기재부 출신이다.
이런 변화는 예보 사장직이 인기를 끌지 못하면서 촉발됐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예보 사장자리는 대외적으로 잦은 업무노출과 많은 업무량에 비해 낮은 연봉 탓이라 보고 있다.
예보 사장은 기본급에 성과급까지 포함하면 2억8000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시중은행장들보다는 낮지만 다른 금융기관들과 비교하면 보통 수준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보 사장직은 업무 노출빈도가 많아 신경쓸 게 많지만 연봉이 높지 않아 매력적이지 않은 자리"라며 "금융당국 출신들은 감시망이 덜하고 노출 빈도도 적은 다른 금융기관장을 더 선호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 금융결제원만 봐도 그렇다. 33년간 한국은행 출신들이 맡아온 금융결제원장 자리에 최근 김학수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이 내정됐다. 앞으로도 금융위 출신들의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결제원장직은 연봉이 4억원에 달하고 퇴직 이후 고문으로 이동, 고문료도 챙길 수 있어 매력적인 자리로 통한다.
지난달 선임된 신현준 신용정보원장도 금융위 기획재정담당관을 지냈다. 전임 민성기 원장은 한국은행 출신이다. 신용정보원장 연봉은 3억3000만원 수준으로 기재부 출신이 포진된 예보나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주택금융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수장들의 연봉 보다 높다.
지난해 4월 취임한 문재우 한국금융연수원장도 과거 금융위와 금감원에 몸담았다. 전임 조영제 원장은 한국은행과 금감원 출신이다.
이렇듯 금융공공기관보다 상대적으로 감시망이 덜한 금융결제원이나 신용정보원 등 금융 유관기관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금융공기업인 주택금융공사 사장은 초대 정홍식 사장 이후 모두 관료나 한국은행 출신이 맡았다. 실제 유재한, 김경호 전 사장은 재정경제부 출신이었으며, 임주재 전 사장은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 서종대 전 사장은 건설교통부와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한 바 있다.
김재천 전 사장도 한국은행 부총재 출신으로 2016년 성과연봉제 도입이 지지부진하자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주택금융공사 노조는 찬반투표 결과 85.1%의 반대로 성과연봉제 도입이 부결됐으나 사측이 강하게 밀어부치며 당해 7월 금융공공기관 9곳 가운데 첫번째로 노사합의를 이끌기도 했다.취임 1년이 지난 이정환 주택금융공사 사장은 이른바 '낙하산'이라는 비난 섞인 목소리가 여전하다. 이 사장은 지난 두차례 총선에서 부산 남구갑 지역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임기 3년이어서 2020년 4월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선 중도사퇴가 불가피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 출신들이 명예와 부를 챙기면서 상대적으로 일하기 더 편한 기관장을 선호하는 추세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