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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사 사태는 생각지도 못한, 예상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사고다. 코오롱생명과학이 바이오 업계에 큰 잘못을 한 것도 있지만, 환자들에 대해선 대체 어떻게 보상할 건지..."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헛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우석 코오롱생명과학 대표는 지난 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이하 인보사)'의 판매 중단 배경을 설명하고 사과에 나섰다.
인보사는 1액과 2액으로 구성돼 있다. 1액은 다른 사람에게서 채취한 세포인 동종유래 연골세포(HC)이고, 2액은 성장인자 유전자(TGF-β1)를 도입한 형질전환세포(TC)로 구성됐다. 유전자를 담은 2액 덕분에 인보사는 유전자치료제로 허가 받았다.
코오롱생명과학은 STR검사 방식을 통해 15년 만에 2액의 성분이 연골세포 유래가 아닌 신장세포 유래인 것이 발견됐다는 입장이다.
이우석 대표는 주성분의 명칭만 변경하는 품목허가 변경으로 수습 가능하다고 봤지만, 일각에선 품목허가 취소까지 이를 수 있는 중대한 사고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사과와 적극적인 해명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다. 지난 1일 코오롱생명과학과 코오롱티슈진의 시가총액은 각각 2568억원, 6284억원 줄었다. 그룹 지주사 코오롱의 시총 827억원 감소한 것까지 합하면, 무려 1조원에 가까운 시총이 하루 사이에 증발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일로 인해 한국 생명과학계의 대외신임도가 다시 꺾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생명과학계는 지난 2005년 '황우석 사태'로 인해 이미 한 차례 대외신임도가 대폭 하락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줄기세포에 씌워진 오명 탓에 바이오 업체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줄기세포치료제를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인보사 사태를 계기로 유전자치료제, 세포치료제 관련 규제가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 업계에서는 바이오산업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지원에 관한 법률안(첨단바이오법)' 통과에 제동이 걸릴까봐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 업체의 잘못으로 바이오 업계 전체가 동반책임지는 양상으로 번지게 될 것이라는 걱정이다.
업계에 미치는 파장뿐 아니라 인보사를 투약받은 환자 관리 문제도 시급하다. 인보사는 품목허가를 받은 2017년 11월부터 제품 판매를 시작해 올 2월 말까지 환자 투여 건수가 3403건을 기록했다.
1회 시술에 600~700만원씩 지불하고 인보사를 투여 받은 환자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우에 따라 집단소송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인보사가 고가 의약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천문학적 비용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이우석 대표의 사과에서 환자 관리 문제에 대한 언급은 빠져있었다. 인보사를 투약 받은 환자들의 집단소송 가능성에 대해 그는 "인보사의 안전성·유효성에 문제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다"고 일축했다.
현재까지 102건의 이상 반응이 보고됐는데 안전성이 우려될 수준의 부작용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는 게 회사측의 주장이다. 여태까지 심각한 부작용이 나오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의약품 제조업체로선 부작용 문제에 대해 보다 세심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지 있지 않을까.
일단 식약처는 혹시 모를 부작용 등에 대비해서 인보사를 이미 투여 받은 환자에 대한 장기 추적조사를 환자 일부에서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회사측이 안전성·유효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철저히 확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우석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오늘 저희의 실수가 반면교사의 사례가 될 수 있게 해 또 다른 누군가가 저희처럼 시행착오를 겪지 않게 돕겠다"며 "바이오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지렛대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했다.부디 이 대표가 자신의 말에 책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