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접수-조정건수, 10년 평균比 36배-24배 폭증"특정금액대 대거 의견제출… 고무줄-형평성 비판 지속"전문가들, 신뢰 회복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필요성 입 모아
  • ▲ 연도별 의견 접수 및 반영 결과. 자료=국토교통부. ⓒ뉴데일리경제
    ▲ 연도별 의견 접수 및 반영 결과. 자료=국토교통부. ⓒ뉴데일리경제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급등하면서 소유자 의견접수 건수도 2만8735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7년 이후 12년 만에 역대 최고치다. 대부분이 공시가를 낮춰달라는 요구였으며 정부는 심의를 거쳐 21.5%를 하향 조정했다. 5건 중 1건 꼴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발표한 공동주택 1338만가구(아파트 및 연립·다세대) 공시가격(잠정치)에 대해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4일까지 의견청취를 받은 결과 총 2만8735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의견접수 건수 1290건에 비해 22.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공시가를 내려달라는 의견이 2만8138건으로 97.9%를 차지했으며 높여달라는 의견은 597건이었다.

    국토부 자료 분석 결과 직전 10년간 평균 788건의 의견이 접수됐고, 이 가운데 251건이 조정됐다. 10년 평균에 비해 올해 접수 건수는 36.4배, 조정 건수(6183건)는 24.6배 높은 수준이다.

    올해 공시가격이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오르면서 의견접수 건수도 역대급으로 폭증했다는 분석이다.

    공시가격이 높을수록 보유세, 건강보험료 등 각종 부담이 늘기 때문에 주택 보유자는 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토지를 보상받을 때는 공시가격이 높을수록 유리하다. 지난달 발표된 올해 서울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 잠정치는 14.1%로 12년 만에 가장 큰 오름폭을 기록한 바 있다.

    국토부 측은 △공시가격 상세자료의 조기 공개 △온라인 접수 증가 △집값 상승 등 세 가지를 의견접수 증가 요인으로 봤다.

    이문기 국토부 주택도시실장은 "예년에는 4월30일 최종 공시가격 공시를 할 때 상세한 자료를 공개했다"며 "하지만 올해는 그 시기를 앞당겨 공시가 열람에 들어가는 상세한 자료를 3월15일 발표하면서 국민 관심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통한 손쉬운 접수가 가능해진 것도 늘어난 요인"이라며 "2만8000여건 가운데 1만8000여건인 64%가 온라인으로 접수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시기에는 의견 제출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러한 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 ▲ 자료사진. '래미안 장위 퍼스트하이' 시공 현장. ⓒ성재용 기자
    ▲ 자료사진. '래미안 장위 퍼스트하이' 시공 현장. ⓒ성재용 기자

    제출된 의견 가운데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실제로 조정된 건수 역시 2007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108건이 상향, 6075건이 하향 조정됐다. 하향 조정건수만 보면 지난해 284건에 비해 21.3배 늘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세 6억원 이하 공동주택 공시가는 한 자릿수만 상승한 반면 서울에 있는 시세 10억~50억원의 경우 두 자릿수 이상 상승하면서 소유자들의 불만이 많았다"며 "이 구간에 있는 소유자들이 대거 의견을 제출해 하향조정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특정 금액 대에서 하향 조정이 집중되면서 형평성 논란은 물론, '고무줄 공시가'라는 비판도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격조정은 국토부가 의견 제출을 받으면 한국감정원 직원이 현장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세 재검토와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 심의를 거쳐 제출된 의견이 합리적인 경우 가격이 조정된다.

    이 실장은 "의견청취 신청 여부와 상관없이 조정이 필요한 부분은 조정했다"며 "접수한 의견에 대해 특성조사가 제대로 됐는지 다시 한 번 들여다봤고 시세분석, 합리성 여부 등을 반영해 일부 수용했다. 유사사례가 인근에 있으면 직권으로 재조사해 정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요 시·도 공시가 상승률도 잠정치에 비해 소폭 하향 조정됐다. 서울은 14.1%에서 14.0%로, 경기는 4.74%에서 4.65%로 내렸다. 전국은 5.32%에서 5.24%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30일부터 한 달 간 진행되는 이의신청 접수도 예년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뒤늦게 공시가격을 조정하거나 의견청취에서 조정이 거절된 소유주 등이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공시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양지영 R&C연구소 소장은 "공시가격은 세금 및 건보료 부담, 복지 수급 등 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며 "다수 지역에서 변동률이 조정됐다는 것은 국민에게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정부가 고가주택의 공시가격 현실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며 "명확한 기준 마련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공동주택 공시가격 발표가 마무리됐지만, 주택시장에 큰 폭의 조정이나 반등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유세 부담은 늘어나겠지만, 이미 부동산시장에 선반영됐기 때문에 정부가 의도하는 가격 하락보다는 거래 둔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6월1일 보유세 과세표준일이 임박했음에도 시장 출회 매물이 크게 늘지 않고 있다"며 "연내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자부담 증가 우려도 낮아졌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이미 노출된 세금 변수보다 거시경제와 금리 등 주택시장 외 변수가 향후 주택시장에 더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며 "전체적으로 조정장세인 만큼 단기 급반등이 어려우니 보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