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참석, "최근 일본의 수출제한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배치되는 것"이라며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는 철회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조치가 시작됐고 더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뾰족한 해결방법 없이 소재산업육성이나 국제여론에 호소하는 등 한가한 대책들만 쏟아낸다는 지적이다.
이날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홍 부총리는 대외경제장관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배치되는 것으로 우리 기업은 물론 일본기업, 글로벌 경제 전체에 대해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홍 부총리는 "우리 업계 및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소통, 공조 등을 통해 다각적이고도 적극적인 대응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며 "우리 기업의 피해 최소화와 대응 지원에도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 발표 이후 문 대통령이 직접적 발언한 내용도 비슷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 보다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두시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한국 기업들에 피해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저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부는 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 필요한 폴리이미드, 포토 리지스트(감광액), 고순도 불화수소(에칭 가스)의 대 한국 수출 통제를 시작한 상태다.
일본이 3대 핵심소재 품목의 수출제한 조치를 걸어버린 이후 해당 품목들이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이전과 달리 일본 수출업체들이 일본 당국으로부터 개별건 마다 새롭게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일본업체들이 한국에 대한 수출허가 신청서류를 일본 당국에 제출했지만 허가를 받은 곳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3개 규제 품목 가운데 핵심은 반도체 회로를 인쇄할 때 쓰는 감광액인 포토리지스트이다.
현재 10나노 이하의 반도체 초미세공정에 사용되는 국산 포토리지스트는 하나도 없는 반면 스미토모 등 일본 기업이 세계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일본산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의 반입이 지연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업체들이 입을 피해도 빠르게 가시화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금까지 정치권이 내놓은 대책은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뭉쳐서 내놓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개발에 매년 1조 집중 투자'가 전부다.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검토하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절차에만 최소 1년 6개월 이상 걸리는데다 반드시 승소한다는 보장도 없다. 이때문에 외교적 해법이 최선이라는 지적이 재계 안팎에서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나 SK하이닉스가 1조가 없어서 부품소재 개발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하소연이 돌아온다.
재계에서는 정치권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했을 때 열린 한·미·일 정상 업무오찬 때 “일본은 우리의 동맹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 이후 일본과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틀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당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한·미·일 정상회동에서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지만 일본은 동맹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고 전했다.
-
경제와 외교 전문가들도 양국의 정치, 외교적 문제를 사법적 잣대로 결론 내리는 것은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한일 양국 정상 간 담판을 통한 ‘톱다운’ 방식으로 해결책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연구원장은 7일 국회에서 경제·외교 전문가들이 참석한 자유한국당 긴급 현안대책회의에 참석해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이 양국 관계를 악화시켰는데,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사법적 개입은 자제하는 게 필요하다"며 "국제법 전문가를 대법원에 참여시켜 이런 문제를 판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 전 원장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국내적 정의와 도덕 논리로 만 판단을 내렸을 때 그에 따른 충격과 피해는 우리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는 "일본 정부의 자국산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의 핵심은 문재인 정권의 외교참사라는 것"이라며 "기업들도 일본으로 달려가지만 정부대 정부의 협상이 문제해결을 위해 최우선되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도 이날 그의 페이스북에 "외국 정상을 만나면 동맹 아니더라도 동맹하자고 하고 전략적 협력을 말하고 상대국에 대해 우호적 발언으로 우리 편을 늘리는게 국가 정상이 외교에서 해야하는 일"이라며 "집권하자마자 대학생 운동권 역사관을 서슴없이 내지른 치기어린 행동의 결과가 지금의 무역 보복으로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SG) 이코노미스트는 그의 페이스북에 "현재 시작되고 있는 한일간의 갈등 상황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당사자"라며 "양국 다 금전적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확전보다는 봉합 쪽으로 가지 않을까싶다. 이를 위해 징용에 대한 보상을 일본 기업이 아닌 우리 정부가 해야 한다고 본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