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근본 원인 외면한채 의병, 죽창가 등 정신승리만기업 내세우는 여론전 안돼… 청와대, 컨트롤타워로 나서야이대로 시간 지나면 2차보복에 백색국가 제외 불가피
  • 일본정부의 수출규제 공세에 우리 정부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식석상에 나설 때마다 발언 수위를 높이며 일본정부에 '경고'를 보내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뾰족한 수를 꺼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양국 갈등 속에 경제위기는 더욱 가시화 되는 중에도, 정작 일본의 무역압박의 이유조차 진단하지 못한 채 오히려 활로찾기에 급한 경제계에 부담만 늘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분석없는 경고와 회유… 한국 경제성장 견제가 이유?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는)우리 경제가 한 단계 높은 성장을 도모하는 시기에 우리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8일과 10일에 이어 나온 3번째 대일 메시지로, 연일 강해지는 수위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의도가 거기에 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처가 한국 경제성장을 발목잡기 위한 속셈이라는 인식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일본은 당초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조치의 이유로 내세웠다가 개인과 기업 간의 민사판결을 통상 문제로 연계시키는데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우리에게 전략물자 밀반출과 대북제재 이행 위반의 의혹이 있기 때문인 양 말을 바꾸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의혹제기를 기반으로 "이번 일을 우리 경제의 전화위복 기회로 삼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며 "결국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임을 경고해 둔다"고 했다. 이와 함께 "일본정부는 일방적인 압박을 거두고 이제라도 외교적 해결의 장으로 돌아오기 바란다"고도 했다.
  •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청와대
    사실상 선전포고… 정부는 '나몰라라', 기업은 '사색'

    문 대통령의 강경 대일 발언에 적지 않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뚜렷한 대책도 없이 사실상 일본과의 경제전쟁 선전포고를 선언해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외교부, 조국 민정수석과 청와대 참모, 그리고 여당은 부디 국익을 위해 언행을 각별하게 주의하고 냉철하게 행동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했다.

    그는 "청와대 안보실 차장은 100년 전 국채보상운동을 꺼내들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의 12척의 배로 결의를 다지고, 여당의 특위위원장은 의병을 일으킬 일이라더니, 급기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죽창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면서 "조국 민정수석이 여유 있게 드라마를 보고 '죽창가'를 올린 7월13일 토요일은 비상사태를 맞아 부품 조달을 위해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 긴급 회의를 소집한 날"이라고 지적했다.

    각 분야별로 일본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대통령이 나서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일본 경제산업성에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와 심사 우대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려는 조치에 대한 철회를 요청하는 정책건의서를 전달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당장 수출규제 조처를 막는데 급한 실정"이라며 "재계의 각고의 노력이 정부의 강경 메시지에 묻히지는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청와대
    '북핵 위협이 경제규제 근본 원인' 지적도

    일본이 경제규제라는 사상 초유의 카드를 꺼낸 데에는 북한의 핵위협이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한 여당 전문위원은 "정부가 다각적인 외교접점을 모색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안보적 측면에서의 협상 테이블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일본이 수출규제 카드를 꺼낸 시점이 남북미 판문점 회동이 끝난 직후라는 점에서 이 같은 분석도 신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한국 경제성장 견제 의혹론' 인식에서 볼 수 있듯 우리 정부는 이 같은 분석을 애써 배제하려는 눈치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차장은 미국 방문 직후인 지난 14일 "한미일 협력이 훼손돼서는 안되는 점과 반도체·디스플레이 글로벌 공급체계에 영향을 미쳐서 미국 기업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데 (미국 측이)많이 우려했고 우리 입장을 잘 이해했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이어 "(한국을 통해) 북한으로 전략물자가 밀반출될 수 있다는 일본 입장에 대해 미 측도 우리와 같은 (근거가 없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북핵을 둘러싼 한일 안보갈등설을 일축하는 모습이었다.

    정부는 이런 기조 속에서도 물밑으로는 일본 당국 안보 관계자와의 협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6일부터 시작되는 서호 통일부 차관의 방일 일정 중에 일본 외무성 북핵 당국자와 면담을 갖기로 한 것이다. 만약 만남이 이뤄질 경우 일본의 수출규제 조처 이후 가지는 한일 협상테이블 중 가장 격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 내세우는 여론전 안돼… 청와대, 컨트롤타워 나서야

    청와대는 당분간 대일 여론전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이번 대일 문제에 대한 문제인식이 매우 강경하다"며 "우리가 잘못한 게 없는데 자세를 낮출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16일 당청 대책회의를 시작으로 18일 문 대통령과 여야 5당대표 회동 등 지난주 경제계 간담회에 이어 정치권 의견도 모으고 함께 머리를 맞대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치권이든 경제계든 국가간 외교문제에 정부가 아닌 객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여주기식 회동과 간담회에서 그치지 않고 청와대가 직접 컨트롤 타워를 자처해 외교명분과 논리를 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윤상현 국회 외통위원장은 "(한일)두 나라의 세계적인 민간 기업들은 졸지에 이득 없는 싸움에 휘말려 난감하기 그지 없는데 (양국은) 계속 싸우겠다고 한다"며 "싸움판에 결박당한 두 나라 중소기업들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 지경인데 발언권도 얻지 못한 채 애간장만 탄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정치적 갈등을 풀어내는 능력이 정치력"이라며 "정치와 경제는 다르다. 정치하는 식으로 경제를 다루면 경제는 망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