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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 노조가 매우 위험한 선택을 했다. 2019년 임금협상에서 원하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전면파업을 강행한 것이다. 대우자동차 시절이던 1997년 이후 22년만이다.
노조는 기본급 5.65% 정액 인상(호봉승급분 별도)과 통상임금의 250% 규모 성과급 지급, 사기진작 격려금 650만원 등 1인당 약 1650만원의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5년간 누적적자가 4조5000억원에 육박한 상황에서 노조의 주장을 수용할 경우 1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며 맞서고 있다.
결국 한국지엠 노조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전면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차례 실시한 부분파업과 잔업 및 특근 거부 등까지 합하면 1만여대의 생산차질을 초래, 약 2000억원의 매출 손실이 예상된다.
가뜩이나 판매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지엠 입장에서는 설상가상인 셈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6.2% 감소한 23만여대에 그쳤다.
한국지엠 노조가 공멸을 선택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판매 부진과 적자 누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자동차를 많이 팔아야 수익이 나고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 그래야 투자도 늘리고 직원들도 더 뽑을 수 있다. 현재 상황은 지속가능한 경영이 불확실하다.
최근 한국지엠은 쉐보레 브랜드에 대해 수입자동차협회(KAIDA) 가입 신청을 했다. 수입해서 판매하는 차종에 대해서는 수입차로서 제 값을 받겠다는 심산이다. 그 시작으로 콜로라도와 트래버스를 잇따라 출시하고 본격적인 판매에 나서려던 참이다.
수입차로서의 새로운 포지셔닝 영업 전략과 마케팅에 힘을 쏟아야 하는 시점이지만, 노조의 전면파업에 발목이 잡히는 형국이 됐다. 볼륨 모델은 아니지만 신차 효과를 통해 한국지엠의 새로운 활력과 내수진작의 모멘텀으로 만들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특히 현대차 노조가 8년만에 무분규 타결을 했다는 점도 곱씹어야 한다. 강성 노조의 대명사이자, 자동차업계의 맏형인 현대차가 힘든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과의 경제 갈등으로 대외 경영환경 여건이 악화된 것을 감안해 현대차 노조가 파업 없이 올해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위기 앞에서는 제 밥그릇을 챙기기 보다는 뭉쳐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에 가능했다. 한국지엠 노조도 절실하게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GM 본사의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지난달 말에 한국을 방문한 줄리언 블리셋 GM 해외부분 총괄사장의 메시지를 허투루 들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당시 그는 “본사 경영진은 한국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물량을 다른 국가 공장으로 이전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이미 GM은 전 세계에서 공장폐쇄와 구조조정을 잇따라 실시한 바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이뤄지는 생산 계획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한국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군산공장을 폐쇄했다. 이처럼 노조의 무리하고 강경한 행보는 GM 본사에 명분을 만들어줄 수 있다. 추가적인 공장 폐쇄를 비롯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 더 나이가 한국 철수라는 최악의 카드까지 꺼낼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지엠은 스스로 공멸을 선택한 꼴이 된다. 공장도 없고 회사도 없고 노조원들도 없어진다. 노조가 원하는 것이 공멸인지 묻고 싶다. 다시 한번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