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1200원대… 항공유 소비 15년 만에 최저기간산업 안정기금 대상 제외… 교통세 등 '납부유예' 그쳐납세 유예 효과 제한적… 투자 인센티브 확대 등 지원책 요청
  • ▲ 주유. ⓒ정상윤 기자
    ▲ 주유. ⓒ정상윤 기자

    #1.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26일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282.05원으로, 전날보다 또 다시 하락하면서 1월16일 1571.56원 이후 103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국내 휘발유 값이 1200원대를 기록한 것은 2008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12월20일부터 이듬해 1월2일까지 14일간 평균 1292.19원을 기록한 바 있다.

    #2. 석유공사 집계를 보면 3월 국내 항공유 소비량은 113만배럴로, 2004년 11월 75만배럴 이후 15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같은 기간 재고량은 814만배럴로 통계 집계 이래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3월 항공업에서 석유소비량은 85만배럴로, 전년동기대비 72% 줄었다.

    국제유가 급락과 수요절벽으로 정유업계가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당장 1분기 수조원대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석유제품 가격 하락이 본격 반영되는 2분기 이후도 녹록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정유업계에서는 앞선 납세 유예 등의 혜택 이상의 정부 지원책을 요구하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에쓰오일의 발표를 시작으로 현대오일뱅크(29일), SK이노베이션(5월6일), GS칼텍스(미정) 등의 1분기 잠정실적이 공개될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정제마진 악화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수요 감소 그리고 최근 국제유가 폭락까지 겹치면서 정유4사의 영업손실이 3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조경목 SK에너지 사장은 최근 정유업계 간담회에서 "경영 상황이 최근 10년 중 최대 위기"라며 "셰일가스 패권을 둘러싸고 일어난 산유국간 갈등으로 실적이 최악 수준이었던 2014년과 비슷하지만, 더 안 좋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유가 폭락에 따라 재고평가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와중에 정제마진마저 회복되지 않고 있어 진정한 위기가 2분기부터 본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유사들은 위기에 대응해 공장가동률을 기존 100%보다 20~30% 낮춰 생산을 줄이고 급여 반납, 희망퇴직 등을 추진하는 비상경영을 가동하고 있으나, 자구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에 정부는 석유 수입·판매부과금과 관세를 유예하고 석유공사의 여유 비축시설을 임대하는 등의 지원책을 발표했다. 또 국세청은 정유업계 4월분 교통·에너지·환경세 등 납부기한을 7월까지 3개월간 유예했다.

    정유업계는 정부의 이 같은 지원이 유의미하지만, 추가 지원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유동성 문제에 숨통을 틔워줬지만,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되면서다.

    최근 간담회에서 협의된 석유공사 비축시설 대여료 한시 인하의 경우 업체별로 3개월 기준에 수십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납부유예가 논의된 석유관리원의 품질검사 수수료는 내수 판매용 석유제품에 ℓ당 0.47원으로, 국내 정유4사 기준으로 월 20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아울러 석유저장시설 개방검사 유예 방안은 매년 원유와 석유제품 저장시설의 10% 정도를 대상으로 진행하는데, 올해 유예하면 내년에는 20%를 개방 검사해야 하므로 1년을 연장하는 방안이 아니면 실익이 없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 ▲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사장(좌)과 조경목 SK에너지 사장이 22일 간담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성재용 기자
    ▲ 강달호 현대오일뱅크 사장(좌)과 조경목 SK에너지 사장이 22일 간담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성재용 기자

    더군다나 정부가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국내 기간산업에 40조원의 자금을 수혈하기로 했는데, 대상에서 정유업계가 제외되면서 업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정부는 KDB산업은행 주도로 40조원 이상 규모의 '기간산업 안정기금'을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재원은 국가보증 채권을 발행해 조달하며 지원 대상은 △항공 △해운 △조선 △자동차 △일반기계 △전력 △통신 등 7개 업종이다. 대상 업종 내 지원을 희망하는 기업이 요청하면 조건협상 이후 산업은행이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경영난을 호소하며 정부 지원을 요청한 정유업종은 제외되고 내수 기반이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전력·통신 업종이 포함됐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세 지원 확대 외에 투자 인센티브 확대 등을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먼저 현재 2~3개월인 각 세금의 유예기간을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늘려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간담회에서 김효석 대한석유협회장은 "대책이 대개 한두 달 정도 단위로 나오고 있는데, 현 상황을 감안하면 최소한 6월까지는 해줘야 한다"고 건의했다.

    또한 현재의 조세 체계를 좀 더 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해달라고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동성 확보 같은 단기 처방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기에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업계는 정유 공정용 중유 등에 적용되는 개별소비세의 경우 조건부로 면세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유사들은 지금처럼 정제마진이 악화될 땐 원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원유 대산 값싼 중유, 벙커씨유를 원료로 써서 석유제품을 생산한다.

    정유사들은 공정용 중유를 수입할 때 세금을 내는데, 정부는 이렇게 생산한 석유제품을 판매할 때 또 세금이 부과되면 중복 납부가 되기에 휘발유, 경유에 대해서는 이전에 냈던 세금을 돌려준다.

    하지만 정제 과정에서 생산하는 나프타, 벙커씨유, 항공유 등 세금이 처음부터 붙지 않는 제품의 경우 제외할 수 없는 세금이 없다보니 돌려받을 기회자체가 없어 이중과세가 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형태로 추가 지출한 세금이 지난해 247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납부 유예를 골자로 하는 지원책으로는 돈맥경화를 해소할 수 없다"며 "요즘처럼 시황이 나쁠 때는 공정용 중유의 경우 과세물품에서 제외하거나 조건부로 면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정유업계는 업황 부진 속에서도 투자가 이어질 수 있도록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도 요청했다. 특히 기업의 설비투자 금액 중 일부를 법인세에서 공제해주는 '임시투자 세액공제'의 한시적 부활을 건의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공제율이 5%로 높아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가 확실했지만, 2011년에 없어졌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기업들로 하여금 투자를 독려하기 위해 필수적인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환경보전시설과 안전시설에 대한 투자세액공제율도 높여달라고 건의했다. 현재 3%인 환경보전시설 투자공제율은 5%로, 1%인 안전설비 투자공제율은 3%로 높여달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제 인센티브를 통해 정유사가 투자를 확대한다면 환경·안전설비가 확충돼 기업은 물론, 지역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심각한 경영여건 속에서 가동률 축소, 경비 절감 등 자구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세계 석유수요가 급감해 수출 비중이 큰 국내 기업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며 "유가 및 수요 정상화 회복에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전향적인 추가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회복이 어렵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