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그룹 비전2020 대부분 달성 실패… 수정하거나 못미치거나주요 그룹 오너, 2010년 비전 발표… 장미빛 전망 대부분매출 기대치 절반도 못 미쳐, 10년간 외부변수 많았다 지적도
  • 2020이라는 숫자가 주는 울림은 유통업계에 있어 각별한 것이 있다. 적어도 지난 2010년에는 그런 분위기가 팽배했다. 주요 기업들이 앞다퉈 비전2020을 발표하며 향후 10년의 목표를 제시했던 이유다. 하지만 2020년은 기대만큼 풍요롭지 않았고 장기 목표로 제시했던 과제와 성과 대부분이 ‘낙제점’을 면키 힘들어졌다.

    오히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비전 달성 실패의 핑계거리를 만들어줬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비전2020 달성이 유력한 기업은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다. 비전2020을 설정할 당시 유통시장 분위기가 장밋빛전망 일색이었던 점도 주효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빠르게 회복되며 백화점,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온라인, 편의점이 빠르게 성장하던 시점이다. 

    ◆ 유통업계, 10년 전 앞다퉈 비전 밝혔지만…

    대표적으로 롯데그룹은 굴곡이 많았던 곳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09년에 2018년까지 그룹 매출 200조원을 달성해 아시아 10대 브랜드가 되겠다는 ‘Asia Top 10 Global Group’ 비전을 선포한 바 있다. 이후 2016년 이 목표 달성을 2020년으로 연장했고 지난 2018년에는 매출목표를 포기하고 새 비전으로 ‘고객과 함께 일상의 가치를 창조하는 롯데’을 제시했다. 

    실제 롯데그룹의 매출은 지난해 기준 65조2700억원으로 올해 매출 역시 최초 비전에 크게 못 미칠 전망이다. 2017년 예상치 못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중국의 보복으로 유통사업에 큰 타격을 입었고 이것이 회복되기도 전 올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매출하락이 가시화됐다. 
  • ▲ ⓒ각사
    ▲ ⓒ각사
    반면 계열사로 보면 비전 달성이 유력한 계열사도 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2015년 비전2020을 통해 2020년 면세업계 세계 1위 사업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실제 롯데면세점은 올해 글로별 면세업계 1위가 유력하게 점쳐지는 중이다. 

    다만 마냥 기뻐하기는 힘든 처지다. 글로벌 1위 면세사업자인 스위스 듀프리가 코로나19의 여파로 직격탄을 맞으며 매출 1위 수성이 어려워진 탓이다. 사실상 1위 사업자의 부진이 비전 달성의 배경이 된 셈이다. 

    신세계그룹도 비전2020 앞에서 체면을 구긴 경우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지난 2011년 신년사를 통해 “2020년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올 한해 장기 비전을 명확히 수립하고 이 같은 로드맵에 따라 일관되게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이마트는 2020년 매출 60조원, 영업이익 3조7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는 새 기업 비전 ‘레츠 고(Let's Go 2020)’를 발표했다. 창고형 매장 트레이더스와 이마트몰을 2대 핵심사업으로 정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포부다. 특히 이마트몰은 2020년 전체 매출의 15%를 달성하겠다는 자신감도 곁들어졌다. 

    하지만 이 역시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마트는 지난해 매출 19조600억원, 영업이익 1507억원을 기록해 목표에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마트의 온라인 매출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가 당시 계획대로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고 온라인 매출이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는 점이 위안이 되는 정도다. 

    ◆ 유통업계 10년간 대외 변수 시달려

    현대백화점의 상황은 조금 나은 편이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2010년 창립 39주년 행사에서 2020년까지 매출 20조원에 경상이익 2조원, 현금성 자산 8조원을 달성하겠다는 ‘패션(PASSION) 비전 2020’을 선포한 바 있다. 

    2020년까지 유통(백화점)부문 매출을 10조6000억원으로, 미디어 사업을 4조8000억원으로, 종합식품사업부문을 2조6000억원까지 늘린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설정됐다. 기업 소모성자재(MRO)사업도 1조2000억원까지 끌어올릴 계획이었다. 

    결과적으로 매출은 목표에 근접했지만 이익 규모는 크게 미달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8조9200억원이지만 유통부문의 총매출을 집계할 경우 19조원대로 목표에 근접한다. 다만 경상이익은 지난해 7800억원으로 목표의 절반에 못 미쳤다. 

    국내 대표적인 유통그룹이 모두 2020년 목표 달성에 부진한 성적표를 들고 온 셈이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전년 보다 눈에 띄는 실적을 기록하기도 어려워진 상태. 업계 일각에서는 오히려 코로나19가 비전 달성 실패의 위로가 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물론 이를 단순히 목표 달성을 실패라고 치부하긴 힘들다. 비전은 단순 숫자에 대한 목표만이 아닌 조직이 장기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관과 지향, 이념을 모두 통합하는 개념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2010년대는 유통그룹의 오너 2~3세가 막 경영 색깔을 내기 시작했을 당시였고 시장 상황도 긍정적 전망 일색이었으니 충분히 가능하다 판단할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라며 “그만큼 10년 사이 시장 환경이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는 반증도 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유통시장은 지난 10년간 빈말이라도 순탄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사드배치로 인한 중국과의 갈등을 비롯해 온라인 e커머스 시장의 급격한 성장, 경기침체부터 출점을 제한하는 유통산업발전법 등의 규제 이슈까지 온갖 대외 변수가 넘나들던 시장이기도 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비전 선포 후 몇 년 뒤 조용히 없던 것으로 치고 다른 비전을 발표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막연하게 높은 목표보다 시장을 냉철하게 점검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책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