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반등 불구 코로나 여파 수송용 침체2차 대유행 조짐… 2~3분기 실적 반등도 어려워고정비 줄이고, 사업다각화 모색… 탈출 '안간힘'
  • ▲ 자료사진. SK 울산CLX. ⓒ성재용 기자
    ▲ 자료사진. SK 울산CLX. ⓒ성재용 기자

    정유사들의 수익 지표인 정제마진이 석달째 마이너스(-)를 이어가고 있다. 국제유가 반등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확대되는 만큼 침체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유사들도 정기보수 일정 조정, 고정비 감소 등 자구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 등을 병행하고는 있지만, 반등시점을 가늠할 수 없는 점은 마찬가지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6월2주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0.4달러로 집계돼 역대 최장기인 13주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가·수송비 등을 뺀 것으로, 정유사의 수익을 결정하는 지표다. 업계에서는 적어도 4달러는 돼야 수익이 난다고 보는데, 이를 넘은 것은 지난해 10월2주 5.8달러가 마지막이다. 8개월가량 제품을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대개 정제마진과 연동하는 국제유가가 최근 상승 추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제마진의 지속적인 부진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평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중동산 두바이유는 배럴당 13.52달러(4월22일)까지 폭락했지만, 이후 반등해 이달 초에는 40달러 선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정유사 기대와 달리 정제마진은 여전히 마이너스에 머물러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감소한 석유제품 수요가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동이 제한되면서 정유사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휘발유·항공유 등 수송용 석유제품의 매출이 각 사마다 80%가량 줄어들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분석 결과 올해 세계 원유 수요는 지난해보다 하루 평균 860만배럴 줄어들 전망이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140만배럴)는 물론, 1980~1983년 2차 오일쇼크(-630만배럴) 때보다도 큰 감소 폭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유가가 크게 올랐지만, 이는 실질적인 수요가 회복된 게 아니라 유동성이 과잉 공급된 데 따른 효과로 본다"며 "언제든 다시 무너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 우려가 커지는 점도 석유제품 수요 회복을 저해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22개주에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고, 중국 베이징에서는 11일 신규 확진자가 두 달 만에 발생한 이후 농수산물 도매시장 집단감염 사태로 번져 14일까지 79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이들 국가에서 코로나19가 다시 번진다면 회복 기미를 보이던 경제활동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동제한으로 인한 휘발유·항공유 수요가 회복되지 않을 뿐더러 공장 셧다운 사태가 또 일어나 제조업 전반에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1분기에만 4조원 이상 적자를 본 국내 정유4사는 정제마진 부진이 지속된다면 3분기 상황도 희망적으로 보기 힘들다고 우려한다. 최근 유가 반등으로 재고평가손실을 줄어들겠지만, 정제마진이 회복되지 않는 이상 실적 반등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정제마진이 1달러 떨어질 때마다 정유사들은 1조원가량 손실을 본다고 추산한다"며 "3분기에는 실적이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금 상황이 이어진다면 그마저도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당장 정제설비 정기보수 등을 통해 실질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보수기간 중에는 조업을 중단하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이달 말까지 정기보수를 한다. 이를 통해 하루 15만배럴가량의 생산을 줄였다. SK이노베이션의 생산능력은 하루 111만배럴이다. 다만 정기보수가 마무리된 뒤에도 기존 생산량만큼 공장을 재가동할 지 여부는 미지수다.

    이와 함께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꿈의 직장'으로 불리던 에쓰오일은 올해 희망퇴직 제도를 도입한 뒤 매년 희망퇴직을 받기로 했다. 회사 측은 '승진 적체 해소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불황 여파로 보고 있다.

    고정비 절감에도 나섰다. 에쓰오일은 지난달부터 연말까지 임원진 50여명의 급여 20%를 반납하기로 했다. 또 현대오일뱅크도 3월 강달호 사장을 비롯한 전 임원의 급여 20%를 반납하고 경비예산 70% 삭감을 주요 내용으로 한 비상경영체제를 결의한 바 있다. GS칼텍스 역시 임원 직급에 따라 급여의 10~15%를 반납하고 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업 포트폴리오 재구성도 병행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분리막을 제조하는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의 기업공개(IPO)도 추진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SK네트웍스의 직영주유소 300여개를 인수하면서 SK에너지에 이어 업계 점유율 2위로 올라섰다. 실적 악화 몸살을 앓는 와중에 내년 시장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화사별로 구조조정 등 비용 절감과 사업다각화 움직임이 올 한 해 내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