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인텔, 퀄컴 등에 M&A 추진일부 사업부 인수, 설계·특허 매각 전망종합반도체 IDM 위기감 고조AI반도체가 대세… 파운드리 분사 고개
  • ▲ ⓒ인텔
    ▲ ⓒ인텔
    반도체 제왕으로 군림했던 인텔이 경영 위기를 맞아 매각 대상에 오르면서 반도체 시장에 지각변동이 예고된다. AI(인공지능)를 선점한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반도체 시장이 재편되는데 이어 인텔과 같은 종합반도체(IDM) 기업이 쪼개지고 합쳐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업계 판도가 또 한번 크게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23일 반도체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창사 이래 최대 경영위기에 빠진 인텔이 내부적으로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동시에 물 밑에서 인수·합병(M&A)와 지분 투자 유치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퀄컴이 인텔에 인수를 제안했다고 전했다. 다만 인텔이 퀄컴의 인수 제안에 응했는지, 제안 조건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업계에선 앞서 추진됐던 반도체 기업들의 M&A로 볼 때 이번 퀄컴의 인텔 인수도 불발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무엇보다 각 국의 반독점 심사 벽을 넘어야하는데, 손 꼽히는 미국 반도체 기업 간의 합병에 대해서 중국 측이 대립각을 높일 것이라는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대신 퀄컴이 인텔의 일부 설계 분야 사업부나 특허 등을 사들이는 방식은 유효할 것으로 예상된다. 퀄컴은 스마트폰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개발과 판매를 주력으로 하는 대표적인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지만 AP 관련 특허나 무선통신 분야 특허를 라이선싱(일정 사용료를 받고 특허를 대여하는 것)하는 사업도 중요한 한 축으로 삼고 있어서다.

    통매각은 사실상 어려운 형국이지만 사업부문별이나 핵심 특허 및 자산 매각이 가능하다면 퀄컴 외에도 인텔 딜에 뛰어들 잠재 후보는 많다. AI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텔 인수를 추진한 퀄컴과 마찬가지로 삼성이나 SK하이닉스 등도 필요한 일부 설계 기술이나 파운드리 등 사업에 눈독을 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외부 자본 유치를 통해 현재의 인텔 체제를 이어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최근 미국의 대체투자 자산운용사인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가 인텔에 50억 달러(약 6조 6800억 원) 규모의 지분 투자 의사를 전달했고 인텔 경영진이 이를 검토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마저도 극초기 단계에 불과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 인텔이 자생적으로 현재 위기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신뢰를 나타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인텔의 결정에 이목이 쏠린 상황이다.

    AI 경쟁에서 밀린 인텔이 반도체 시장에서 매물로 거론될 정도로 추락하면서 나머지 경쟁사들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AI로 완전히 변한 반도체 시장 판도를 놓치면 인텔처럼 도태될 수 있다는 반면교사가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인텔과 같은 경쟁사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퀄컴 같은 곳들의 움직임도 간과할 수 없어 사실상 인텔발 반도체 대전이 시작됐다는 평에도 힘이 실린다.

    당장 인텔과 같은 종합반도체기업(IDM)인 삼성으로 시선이 쏠린다. 인텔의 이번 위기가 과거 반도체 시장에서 유효했던 IDM 방식의 사업구조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나 다름 없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또 다른 대표적 IDM 기업인 삼성의 향방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최근 삼성이 HBM(고대역폭메모리)에서 경쟁사에 자리를 내주고 AI 반도체 시장 진입에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권을 이어가기 위한 경쟁력 확보가 절실하다는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삼성이 적극적으로 M&A나 지분투자를 통한 경쟁력 확보에 나서지 않고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 우려가 나온다.

    인텔의 추락으로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반도체업계에서 영향력이 올라간 대표적인 곳이 됐다. 한 때 삼성과 반도체 매출 왕좌를 다투던 인텔의 실적이 주저앉으면서 올 3분기 기준으로 SK하이닉스가 인텔을 넘어 매출 3위 자리를 꿰찰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을 선점한 효과를 톡톡히 누리면서 AI로 변화된 반도체 시장 판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기업으로도 꼽힌다.

    과거 인텔의 반도체 왕좌 영광을 누리고 있는 엔비디아의 아성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엔비디아는 지난 상반기에 이어 올 하반기에도 경쟁사들과 압도적인 격차를 나타내며 반도체 시장 매출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킬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 대신 미국 반도체 투톱 자리를 꿰찬 브로드컴도 AI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퀄컴 못지 않은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브로드컴은 지난 2017년 퀄컴을 인수하려고 시도한 이후 정중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퀄컴이 인텔 인수를 타진하며 움직이면서 이를 견제하기 위한 행보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