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4사, 1분기 4조 이어 조 단위 손실 전망마이너스 정제마진에 사우디 OSP 상승 부담 가중세금 유예 납부시점 도래… "3분기 회복 가능성도 깜깜"
  • ▲ 주유. ⓒ정상윤 기자
    ▲ 주유. ⓒ정상윤 기자
    정유업계에 드리워진 암운이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분기 4조원대 영업손실에 이어 2분기에도 1조원가량의 영업손실이 예상되면서다. 국제유가는 반등했지만, 여전히 가라앉은 수요로 정제마진이 등락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서 정부가 유예해준 세금 납부기한이 도래하면서 실적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전례 없는 위기에서 벗어날 드라마틱한 반전은 쉽지 않아 보인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1분기 4조원 이상 적자를 기록한 정유4사는 2분기에도 적자를 면치 못할 전망이다. 다만 1분기보다는 적자 폭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의 2분기 영업손실을 각각 3386억원과 1144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적자 폭을 줄이는 데 그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1분기 대규모 손실의 원인인 유가는 4월 저점을 찍은 이후 반등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제마진이 마이너스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정제마진은 정유사가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을 사들여 판매하고 얻는 이익으로, 정유사의 핵심 수익 지표다. 마진이 올라가면 수익성이 개선되고 떨어지면 반대다. 통상 손익분기점을 배럴당 4~5달러 수준으로 보고 있다.

    7월3주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마이너스(-) 0.5달러로, 전주 0.1달러에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정제마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본격 반영된 3월1주부터 13주 연속 마이너스를 이어가다가 6월3주 배럴당 0.1달러로 흑자로 전환됐다.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면 제품을 팔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셈이다.

    손익분기점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석달 만에 플러스를 나타내면서 업계에서는 회복 기대감이 형성됐다. 하지만 7월1주 마이너스로 다시 떨어진 정제마진은 잠시 반등하는 듯 했으나, 3주에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락다운(이동제한조치) 완화, 여름휴가 시즌 도래로 실물 수요가 실제 개선되고 시장에서도 수요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더해져 정제마진이 플러스로 돌아서기도 했지만, 최근 다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증가해 추가 락다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정제마진 회복세가 주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상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2분기에는 코로나19에 따른 최악의 수요 충격이 반영된 1분기 대규모 적자에 비해 개선된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면서도 "2분기까지도 적자 흐름 자체는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정제마진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것은 수요 부진에 따른 저유가 기조 지속 때문으로 풀이된다.

    항공유가 대표적이다. 마진이 크다보니 정유사의 '효자 상품'으로 불리던 항공유는 정유사 매출의 10~15%를 차지할 만큼 고부가가치 제품이었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항공 여객 수가 바닥을 기면서 수요가 곤두박질쳤다.

    한국석유공사 집계를 보면 4~5월 정유4사가 국내 항공사에 납품한 항공유 규모는 모두 255만배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657만배럴보다 30%대(-61.1%)로 쪼그라들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0일 미국의 석유·액체연료 수요가 2021년 8월까지도 지난해 평균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EIA 측은 올해 미국 내 모든 액체 연료 소비량은 하루 평균 1930만배럴로, 전년대비 210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에도 이 소비는 1990만배럴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가 수익성 챙기기에 나서면서 원유 공식판매가(OSP)를 올린 것도 정유사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아람코는 8월분 아시아 경질유 OSP를 배럴당 1.2달러로 책정했다. 5월 OSP는 -7.3달러까지 떨어진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곧 닥칠 세금 문제까지 유동성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다.

    4월 정부는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정유업계의 상황을 고려해 약 1조4000억원(4월분)의 세금을 유예해줬는데, 이달 말부터 납부기일이 도래한다.

    그때보다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는데, 당시 세금과 7월 발생한 세금까지 3조원가량을 한꺼번에 부담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국세청은 정유업계에 부과하는 4월분 교통·에너지·환경세, 개별소비세의 납부기한을 3개월 연장했다. 또 산업통상자원부는 4월부터 6월까지 석유 수입·판매부과금 납부를 3개월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유예된 부과금은 7월부터 9월까지 한달치씩 내도록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심각한 경영 여건 속에서 가동률 축소, 경비 절감 등 자구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코로나 사태로 세계 석유수요가 급감해 수출 비중이 큰 국내 기업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분기 초대형 적자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세금 유예로 유동성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분기도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 유동성 차원에서 완화될 수 있도록 추가 유예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석유제품은 무엇보다 실수요가 중요한데, 수요 감소가 지속되고 있어 실적의 갑작스런 반전을 기대하기 힘들다"면서 "당초 3분기 실적 회복을 기대했는데, 지금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이 역시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날 에쓰오일을 시작으로 29일 SK이노베이션은 29일, 30일 현대오일뱅크(현대중공업지주)의 잠정실적이 발표될 예정이다. GS칼텍스는 8월 초 ㈜GS 실적 발표를 통해 공개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