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명 의사인력 충원 두고 의(醫)-정(政) 갈등 ‘최대치’ 복지부 역할론 ‘미흡’, 보건의료기본법 20년째 ‘제 역할 못 하는 실정’ 정부 “줄어드는 의사 수, 시급한 과제” VS 의료계 “근본적 대책 없이는 도로아미타불”
  • ▲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1일 총파업 등 대정부 투쟁의지를 결의했다. ⓒ대한의사협회
    ▲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1일 총파업 등 대정부 투쟁의지를 결의했다. ⓒ대한의사협회
    연간 400명씩 10년간 총 4000명의 의사가 늘어나는 것이 보건의료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될까. 의사들은 ‘그렇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파업’으로 대답할 예정이다.

    감염병 비상시국 속 제도를 개혁하려는 정부와 현시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의료계가 투쟁의 노선에 올라타 맞부딪치고 있다. 총파업 돌입과 이에 따른 법적 책임을 부과하겠다는 양상으로 변했다. 첨예한 갈등은 풀릴 기미가 없다.  

    근본적 문제는 논의과정이 생략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실종된 ‘보건의료발전계획’은 갈등의 불씨를 키웠다. 

    ◆ 급작스런 당정의 의사 수 충원 계획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2022학년도부터 10년간 의대 정원을 총 4000명 증원하기로 지난달 23일 합의했다. 이 중 3000명은 지방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지역 의사로 선발한다. 이들은 10년간 정해진 지역에서 의무로 복무해야 한다.

    공공의대를 중심으로 역학조사관과 감염내과 전문의 등 필수분야의 인재 양성도 이뤄진다.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49명)을 활용해 국립공공의료대학원을 설립하고 오는 2024년 3월 개교할 수 있도록 입법을 추진한다.

    시·도별 의료취약지의 규모를 고려해 선발 학생을 시·도에 일정 비율로 배분하며 공공보건의료기관과 보건복지부, 시·도 등에서 10년간 복무하는 조건으로 학비와 실습비, 기숙사비 등을 전액 지원한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006년부터 의대 정원이 동결돼 지역별·분야별 의사 수 불균형과 백신 연구 등을 이끌어 갈 의과학자 부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향후 10년간 매년 400명씩 총 4000명의 의사를 추가 양성해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 ▲ 정부가 제시한 의사 증원 계획안. ⓒ보건복지부
    ▲ 정부가 제시한 의사 증원 계획안. ⓒ보건복지부
    ◆ 문제의 씨앗, 20년째 답보상태인 ‘보건의료발전계획’

    지난 2000년 보건의료기본법이 제정됐다. 목적은 보건의료의 수요와 공급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보건의료의 발전과 국민의 보건복지를 증진하기 위함이다. 의사 수 증원 문제는 여기서 다루겠다는 의미다. 

    이 법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보건의료발전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실정을 감안해 지역별 보건의료계획을 시행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사실상 의료인력 수급 관련 문제는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해 합리적 안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과정 자체가 없었다. 바로 여기서 갈등의 씨앗이 탄생했다는 분석이다. 

    한희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고려대의대) 이사장은 본지를 통해 “이번 의사 수 증원과 관련한 대정부 투쟁, 총파업 등의 문제는 정부가 법에 명시된 내용을 이행하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장기간 논의와 조율을 통해 결정해야 할 사안임에도 직접적 이해관계자이자 전문가의 의료계의 의견을 듣지 않고 강행 드라이브를 걸다 보니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5년 단위의 보건의료발전계획이라는 로드맵을 정하고 세부계획이 설정돼야 하는데, 이 과정이 삭제된 상태에서 당정의 발표가 있었기에 논란이 거세졌다는 것이다. 

    한 이사장은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의료계가 아닌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등 각 분야에서 각자의 의견이 내놓고 있는 것이다. 혼란을 가중시킨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급하게 가면 안 된다. 올해 안에 전문가 논의를 거쳐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해 이에 따른 의료인력 수급계획을 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갈등은 증폭되고 부작용만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지역→수도권, 다시 반복될 것… ‘근무조건’ 개선부터 

    의료계는 연간 의사 수 400명 증원이 된다고 해도 해결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지역 내 의사 인력 부족과 불균형 해소를 위해 ‘지역의사제’를 도입해도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는 인식이 크다. 

    근본적으로 의료전달체계를 정립해 수도권 대형병원 등으로 환자쏠림을 억제하면서 지역별 환자와 의료인력 배치 기준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가 지난달 공공의료기관과 의료 취약지 지원사업 참여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방 의대정원 확대 후 해당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정책에 대해 74%가 ‘비효과적이다’라고 응답했다.

    공공보건의료분야에서 활동하는 의사들 역시 의대 입학정원 증원을 통한 의사 수 확대정책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역효과만 발생시킬 것이라는 의료계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공공의료기관에 의사들이 근무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연봉’과 ‘계약직에 따른 고용불안과 미래 불안전성’이다. 의료취약지 근무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도 소득, 근무환경, 주거 및 교육환경 등으로 집계됐다.

    성종호 의협 정책이사는 “당정이 추진하는 의대 정원 증원은 공공의료인력 확충을 위한 적절한 정책이 아니다. 열악한 환경 및 보수 등 의사가 부족한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현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즉, 아무리 지역에 의사를 묶어뒀다고 해도 특정기간이 지나면 다시 수도권에 몰리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급여나 근무조건 등 실질적 개선책이 마련돼야 의료인력의 원활한 수급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 ▲ 정부가 의사 수 증원의 근거로 삼고 있는 OECD 통계. ⓒ보건복지부
    ▲ 정부가 의사 수 증원의 근거로 삼고 있는 OECD 통계. ⓒ보건복지부
    ◆ 정부의 변, “의사부족 문제는 시급한 과제”

    최근 발표된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0’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임상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인구 1천 명당 ‘2.4명’으로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 수준이었다. 

    복지부는 “우리나라의 의사 부족 문제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됐다”고 지난 5일 규정했다. 제도 시행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국내 의사 수는 13만이나 현재 활동의사 수는 10만 명에 불과하며, OECD 평균만큼 필요한 활동의사는 약 16만명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임을 근거로 제시했다.  

    지역별로 보더라도 서울은 인구 천 명당 의사 수가 3.1명인데 반해, 경북 1.4명, 충남 1.5명으로 지역 편차가 크고 지역 의사 수 부족이 심각하다는 설명이다. 

    국내 전문의 10만 명 중 필수진료과목인 감염내과 전문의는 277명, 소아외과전문의는 48명으로 적고 의료산업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고 기초의학이나 응용의학의 발전을 도모할 의과학자의 양성도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김강립 복지부 차관은 의료계와의 갈등이 좁혀지지 않자 “대화와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을 요청드린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과 관련해 언제든 열린 자세로 적극적으로 협의에 임할 방침”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소통과 협력을 위한 ‘보건의료발전협의체’ 구성을 의협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향후 의료계의 집단행동 과정에서 혹시 불법적인 요소가 발생한다면 법과 규정에 따라 원칙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만에 하나 국민에게 위해가 발생할 경우 엄중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 “답 없다” 파업으로 가는 급행열차 출발 

    정부와 의료계가 주장하는 논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명확한 근거가 존재하기 때문에 조율이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정부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가지 않으면 의료계 파업은 예정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의료계 전반적으로 동일한 목소리를 내는 안건이기 때문에 투쟁의 힘은 강하게 실렸다.

    당장 내일(7일)이다. 먼저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에 반발해 7일 전면 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당초 파업에서 빠지기로 했던 응급실, 중환자실의 전공의들도 동참키로 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측은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들에게 “오는 7일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24시간 동안 업무를 중단하고 단체행동에 참여해 달라”고 공지했다.

    14일에는 의협 주도 총파업도 예고됐다.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료대학 등 정책을 철회하라. 정부가 12일 낮 12시까지 개선 조치를 내놓지 않으면 14일 1차 총파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K방역의 위대함이 전 세계에 증명됐으나 ‘10년간 연간 의사 수 400명 증원’이 예고되자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파업과 이로 인한 의료공백이 현실화되는 시점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과연 정부와 의료계가 복잡하게 얽힌 갈등을 풀고 이 문제를 대화로 풀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