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 최종판결 한 달 앞두고 입장차 첨예주말에도 '반박-재반박'… 입장문만 네 차례합의 금액 차이 커 물밑협상 결렬… "양사 모두 패자 될 수도"
  • ▲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LG화학
    ▲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LG화학
    "제발 소송에 정정당당하게 임해 달라." (LG화학)

    "제발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해주시기 바란다." (SK이노베이션)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기술을 놓고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10월5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양사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판결을 앞두고 주말에도 날선 장외 공방전을 벌였다.

    양측간 논쟁의 쟁점은 944특허에 대한 기술탈취 여부다. LG화학은 자사의 선행기술을 특허로 등록한 SK이노베이션이 오히려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왜곡된 사실로 억기 주장을 펼치고 있다며 반박했다.

    최종판결 이전에 합의점을 찾는 것이 최선의 방법으로 꼽히지만, 서로의 주장에 대해 반박과 재반박 등이 이어지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만큼 '극적 합의'에 도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시작은 LG화학이다. LG화학은 4일 오후 "SK이노베이션이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어 사안의 심각성을 알리겠다"며 입장자료를 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994특허'는 SK이노베이션이 특허를 출원한 2015년 6월에 이미 LG화학이 보유하고 있던 선행기술"이라며 "2013년부터 크라이슬러 퍼시피카에 판매된 LG화학 A7배터리가 해당 기술을 탑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SK이노베이션이 남의 기술을 가져가서는 특허로 등록하고, 역으로 특허침해 소송까지 제기했다"며 "이를 감추기 위해 증거인멸을 한 정황을 우리가 지적하자 '협상 우위를 위한 압박용 카드', '여론 오도'라고 근거 없는 주장을 한다"고 지적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994특허가 자사의 선행기술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SK이노베이션의 994특허 발명자가 LG화학의 배터리 관련 세부 정보가 담긴 문서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SK이노베이션은 "억지 주장"이라며 즉각 반박문을 내놨다. LG화학의 입장문이 발표된 지 약 4시가30분 만에 "994특허는 자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자신들의 기술이 특허화된다고 생각했다면 출원 당시 이의제기를 했을 것"이라며 "특허 출원시 LG화학의 선행기술이 있었다면 등록도 안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쟁사의 특허개발을 주시하며 특허등록을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기술이 특허화된다고 생각했으면 이미 특허 출원 당시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SK이노베이션은 또 "우리 독자 특허를 마치 원래부터 잘 알고 있던 자신들의 기술인 것처럼 과장, 왜곡하는 LG화학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증거인멸도 없다. 어떤 자료도 삭제할 이유도 없고 삭제하지도 않았으므로 ITC에서 소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의 반박문이 나온 지 이틀 만인 6일 재반박문을 내놨다. 'SK 입장에 대한 당부사항'이란 제목의 입장자료를 통해 "제발 소송에 정정당당하게 임해 달라"고 비판했다.

    LG화학은 특히 "특허소송에 대한 주장도 장외여론전이 아닌 정해진 법적절차에 따라 양사가 충실하게 소명해 나갔으면 한다"며 "떳떳한 독자기술이라면 SK이노베이션에서 발견된 LG화학의 관련 자료와 이를 인멸한 이유부터 소송과정에서 명확히 밝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전에 해당기술을 특허로 동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LG화학은 "당시 내부 기준으로는 특허로 등록해서 보호받을 만한 고도의 기술적 특징이 없고 고객 제품에 탑재돼 자연스럽게 공개되면 특허분쟁 리스크도 없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특허로 등록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원 당시 이의제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당사는 경쟁사의 수준과 출원특허의 질 등을 고려해 모니터링 한다"고 했다.

    SK이노베이션이 '소송절차가 한참 진행된 이후에야 문제를 제기한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는 "제기된 직후 자사 선행기술임을 파악해 대응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떳떳한 독자기술이라면 SK이노베이션에서 발견된 LG화학의 관련 자료와 이를 인멸한 이유부터 소송과정에서 명확히 밝혀라"고 덧붙였다.
  • ▲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SK이노베이션
    ▲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SK이노베이션
    같은 날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재반박문이 나오자 즉각 'LG화학의 억지 왜곡 주장에 대한 팩트확인·입장문'을 내놨다. "이미 출시된 경쟁사의 제품에 적용된 기술을, LG 표현에 따라 '훔쳐서' 무효가 된 특허를 출원할 바보는 없다"고 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944특허 침해 관련 소송을 제기했을 때 LG화학이 그들이 가진 기술을 특허화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바로 A7이라는 제품을 내놓고 특허무효를 주장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LG화학은 소송이 제기된 지 2개월이 지난 후 제출한 첫 번째 서면에서 100여개의 특허를 나열하며 선행기술이라 주장했지만, 거기에는 A7이라는 제품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SK이노베이션 944특허 발명자가 LG화학에서 이직한 인물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맞다"고 인정했다.

    다만 "그가 이직한 시점이 2008년이라는 점을 들어 굳이 2015년까지 기다렸다가 특허를 출원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직을 기술탈취로 단정 지어 놓고 그 사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모두 사상시켜 버린다"고 지적했다.

    SK이노베이션이 증거를 인멸했다는 LG화학의 주장에 대해서도 "정직한 소송행위라기보다는 특허권자인 SK의 이미지를 깎아내려 소송과 소송 밖 협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비신사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LG는 소송을 먼저 시작한 당사자로서 사실을 근거로 정해진 소송절차에 정정당당하게 임해주시기 바란다. 제발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도를 넘어선 양측의 비방은 소송 관련 협상이 교착 상태에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양사는 지난달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합의' 가능성을 말했다. 실무진이 만나 서로의 상황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입장 차만 확인한 채 협상은 흐지부지됐다.

    배상금에 대한 입장 차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은 SK이노베이션에 다소 불리하다. 다음 달 예정된 ITC의 최종판결에서 패소할 경우 배터리 셀·모듈·팩 등 미국 내 수입금지 조치를 당할 수 있다.

    LG화학은 합의금으로 수조원을 책정했지만, SK이노베이션은 이직자의 3년치 인건비 수준인 수백억원을 합의금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정싸움'이 격해지면서 최종판결 전 양측의 합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는 소송이 모두 마무리되는데 3~5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양측이 소송비용으로만 4000억원 안팎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치킨게임' 양상이 이어진다면 양사는 소송비용에만 각 1조원 이상을 지출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는 양사의 새로운 주력 업종으로, 그룹 차원에서 포기하기 힘든 면이 있지만, 소송을 계속할 경우 양사 모두 패자가 될 수 있다"며 "양측 최고경영 책임자가 자존심 싸움을 멈추고 파국을 막기 위해 합의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양사의 배터리 공방전은 지난해 4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ITC 및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올해 초 ITC는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결정을 내렸으나,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재검토 절차를 밟고 있다. 10월5일 최종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11일까지 LG화학의 제재요청과 관련, ITC에 의견서를 제출해야 한다. 다만 ITC의 조기패소 결정이 뒤집힌 전례는 없다.
  • #. LG화학-SK이노베이션 소송 일지

    ▲2019년 4월29일 = LG화학,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을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로 제소.
    ▲2019년 5월8일 = LG화학,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SK이노베이션과 인사담당 직원 등을 서울지방경찰청에 형사고소.
    ▲2019년 6월10일 = SK이노베이션, 서울중앙지방법원에 LG화학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 및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 제기
    ▲2019년 9월3일 = SK이노베이션, 2차전지 특허침해로 ITC에 LG화학 제소 및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LG화학과 LG전자 제소.
    ▲2019년 9월26일 = LG화학,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 특허침해 맞소송.
    ▲2019년 10월22일 = SK이노베이션, 서울중앙지방법원에 LG화학 상대로 '특허침해 소 취하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 제기.
    ▲2019년 11월5일 = LG화학, ITC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 관련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판결(Default Judgment)' 요청
    ▲2020년 2월14일 = ITC,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판결 (예비결정)
    ▲2020년 8월27일 = 서울중앙지방법원, SK이노베이션의 LG화학 상대 특허침해 소 취하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판결(LG화학 승소)
    ▲2020년 10월5일 = ITC,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 상대로 낸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판결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