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發 노사관계 시험대'일자리 지키기·정년 65세 연장' 고수모빌리티 전환 걸림돌 우려… 유연성 해법 찾아야
  • ▲ 현대자동차 전주 공장 ⓒ현대차
    ▲ 현대자동차 전주 공장 ⓒ현대차
    현대자동차가 새로운 노사관계 정립으로 진통을 앓고 있다. 전기차 사업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곳곳에서 내연기관 시대 노동조합(노조)에 가로막혀 속만 끓이고 있다. 자칫 노사 갈등으로 전기차 전략 실행이 늦을 경우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노조는 지난 17일 현대차그룹이 발표한 74억달러(약 8조4000억원)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에 대해 공식 반대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노조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천문학적 투자 계획을 사측이 발표한 것은 5만 조합원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반발했다.

    노조는 “기술 선점과 고용 보장을 위한 새로운 노사가 관계가 필요하다”며 “사측이 해외 투자를 강행하면 노사 공존공생은 요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과 부품을 국내 공장에 배정하고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전기차, 자율주행 등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현대차의 구상이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는 것이다.

    노조가 미국 투자 계획에 강하게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가뜩이나 고용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 일감을 해외에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에 들어가는 엔진, 변속기 등이 없다. 모두 배터리와 모터로 대체한다. 1만3000여 개에 달하는 엔진 부품이 모두 사라지게 되므로 일감은 급격하게 줄어들게 된다.

    사업체제가 전기차로 바뀌면 생산 인력은 20~30% 덜 필요하다. 최소 7000명이 넘는 잉여인력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현대차 생산직원의 5분의 1 수준에 달한다.

    노조도 이를 의식한 듯 미국 투자 계획을 저지하고 나섰다. 해외 투자를 확대 하면 할수록 조합원 일감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전기차 생산 증가와 인력 수요 감소, 자국 우선주의 등 산업 환경변화는 무시하고 있다.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들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도 고용 안정에 무게를 뒀다. 노조는 기본급 9만9000원 인상 외에 정년을 기존 만 60세에서 만 64세로 바꾸는 방안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자리 유지를 위해 노사가 함께 노력한다는 내용의 ‘산업전환에 따른 미래협약(미래협약)’도 사측에 제안할 계획이다. 미래협약은 겉보기엔 노사 간 협력을 지속해나간다는 내용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고용인력 감소를 반대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노조는 미래협약이 기술 선점을 통한 경쟁 능력 확보와 회사 발전, 고용 보장을 이루는 새로운 노사관계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미래협약은 △미래 기술도입과 공정한 혜택의 적용 △교육훈련 강화 △고용 안정 △생산 효율성 증대 △육체적·정신적 노동 강도 완화 △의제별 상설기구 설치 △국내 중심의 연구·생산 등을 골자로 한다. 고용을 지켜내기 위한 계산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다.

    노사는 지난해 임금 협상 당시 △고용 안정 △미래차 산업 변화 대응 △직무 전환 추진 등을 골자로 하는 사회적 선언을 채택하고 상생을 위해 공동 노력한다고 밝혔지만, 진전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전기차발(發) 노사갈등이 갈수록 더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노조는 지난 3월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 아이오닉 5 시제품의 생산라인 투입 여부를 놓고 생산라인을 멈춰세우기도 했다. 투입할 인력 규모(맨아워)에 대한 노사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권은경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실장은 “전기차 가격 경쟁력 제고를 위해 동력계통 비용 완화, 부품 수나 공정 작업 수 대비 과잉 인력의 효과적 해소가 필요하다”며 “장기 근속 위주의 인력구조 조정과 파견 및 대체 근로의 합법적 활용 등 생산 유연성 확보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