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불균형 시작… 100달러 시대 도래 전망 나와정유, 국제유가 상승 따른 정제마진 최저 수준 하락석화, 원가 부담 가중-수익성 악화… 호황기 끝나나 우려도
  • ▲ 주유. ⓒ정상윤 기자
    ▲ 주유. ⓒ정상윤 기자
    국제유가가 연일 고공행진을 하면서 정유·석유화학업계가 여파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유가에 가장 민감한 정유업계는 유가 상승에도 정제마진이 줄어들면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다. 석유화학업계 역시 원가 부담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22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73.0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73.66달러에 비해 0.60달러 하락(-0.81%)했지만, 6월10일 70.29달러 이후 9거래일 연속 70달러대를 유지했다. 2018년 10월17일 69.75달러로 70달러 선이 무너진 이래 980일 만이다.

    월간 기준으로는 70.62달러로, 전월 65.16달러에 비해 8.37% 올랐다. 3월 62.36달러 이후 4개월째 60달러 이상을 기록 중으로, 이 역시 2018년 7~10월 이후 처음이다.

    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기조와 코로나19 회복 기대에 힘입어 지난해 11월 배럴당 36달러 저점 이후 지속해서 상승 중이다. 특히 올해 2분기에만 20%에 가까운 상승률을 보였다.

    향후 예상되는 아시아 지역 석유 수요 개선, 미국 원유 재고 감소 등도 원유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공항 이용객 수가 지난해 3월 이후 처음으로 하루 200만명을 넘어섰고, 유럽 항공 교통량은 지난달 3분의 1 증가하는 등 항공 분야의 원유 수요가 늘고 있다.

    석유 수급에 더해 지정학적 요인도 유가 상승세 지속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이란 대선에 따라 미국과 이란간 핵 협상 지연 가능성이 제기되는 점, 예멘 후티 반군의 사우디아라비아 공격도 유가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한편으로 영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고, 미국에서 셰일가스 생산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점은 유가 상승 폭에 제한을 주고 있으나, 상승세를 막을 만큼은 아니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 때문에 글로벌 원유업계에서는 유가가 수개월 내 100달러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세계 최대 독립 석유 딜러인 비톨 △세계 최대 광산기업 글렌코어 △글로벌 원유 중개업체 트라피구라 △세계 최고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등 주요 원자재 트레이딩 업체들은 투자 위축으로 석유 공급이 감소하는 반면, 수요는 계속 증가하는 수급 불균형으로 유가 100달러 시대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 ▲ 여수석유화학단지. ⓒ성재용 기자
    ▲ 여수석유화학단지. ⓒ성재용 기자
    유가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국내 정유업계는 치솟는 유가를 보며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유가 상승은 국내 정유사들에 단기적인 재고이익을 안겨주지만, 여전히 저조한 석유제품 수요로 핵심 수익지표인 정제마진은 여전히 낮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가격이 오르기 전 싸게 사들인 원유로 석유제품을 비싸게 팔 수 있는 '래깅 효과'로 재고이익이 발생해 올해 1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1분기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의 재고 관련 이익은 각각 3800억원, 2850억원으로 추정된다.

    다만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용 등 비용을 뺀 정제마진은 여전히 개선이 요원한 상태로, 2분기 실적 또한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달 2주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1.3달러를 기록했다. 정제마진이 4~5달러를 기록해야 일반적으로 업계가 수익을 볼 수 있으나, 4월5주 3.2달러를 기록한 이후로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항공유 등의 석유제품 가격이 덜 오르고 판매물량도 종전만 못 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코로나19로 인한 제한 탓에 이동수요가 적은 반면, 유가는 전망을 먼저 반영해 오르다 보니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정유사로서는 이윤을 남기기 쉽지 않은 것이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유가가 오르고 있지만 실질적 석유제품 수요는 정체돼 정제마진이 저조하다"며 "정유사에는 일회성 재고이익보다 정제마진 회복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유가 상승으로 석유화학업계는 비용 증가로 직격타를 맞게 됐다.

    원유에서 추출되는 나프타를 기초 원료로 사용하는 석유화학업계는 유가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 증가로 수익성이 악화하는 모양새다.

    유가 상승으로 1분기에 고점을 형성했던 PE(폴리에틸렌)와 PP(폴리프로필렌)의 스프레드도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유가가 현 수준에서 추가로 상승할 경우 원가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특히 올해 초 한파로 가동을 멈췄던 미국 화학 설비가 정상화되고 중국을 중심으로 에틸렌, 프로필렌 등 시설 증설 계획이 완료되면서 공급량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여 전망도 어둡다.

    게다가 반대 상황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어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유가가 하락하더라도 기존에 사들인 원가 부담은 일정 기간 지속되고, 석유제품 수요자들이 구매를 늦추려는 현상까지 빚어질 수 있다"며 "하반기 화학제품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만, 원가 상승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