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금전' 아닌 '가상화폐' 로 간주'금전 조달' 전제한 유사수신행위 처벌 어려워사기죄 적용도 '기망·재산상 이득' 입증 필요
  • ▲ 권도형 테라폼랩스 CEO. ⓒ테라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 권도형 테라폼랩스 CEO. ⓒ테라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수조원대 피해가 발생한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를 수사 중인 검찰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가상화폐와 관련한 법이나 처벌 제도 미비로 법리 적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안팎에서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기도 전부터 관련자 처벌은 고사하고 아예 수사 자체가 어려울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수사 당국이 피해 규모와 국민적 여론을 감안해 수사를 진행하더라도 피해 구제나 관련자 처벌 등 실질적인 소득은 없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은 테라·루나 사태에 대한 법리 적용을 검토 중이다. 테라와 루나는 연 19%의 고리를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투자자들을 끌어모아 글로벌 가상화폐 시장에서 시가총액 10위까지 올랐지만 지난 5월 최고가 기준 99.99% 이상 폭락하면서 수조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해당 코인을 발행한 권도형 테라폼랩스 최고경영자와 공동창업자 신현성 티몬 이사회 의장, 회사 법인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유사수신행위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현재까지 고소장을 접수한 피해자는 104명으로 이들이 입은 피해액은 101억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가상화폐는 '금전'에 포함되지 않아...'기망 행위' 입증이 관건

    검찰은 우선 권씨 등에게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유사수신행위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유사수신행위가 인정될 경우 수신금액 전체에 대한 범죄수익금이 보전된다. 반면 사기죄만 적용될 경우 신고된 피해액에 대해서만 범죄수익금 보전이 가능하다.

    유사수신행위법은 법령에 따른 인허가나 등록·신고 등을 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유사수신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해당 법률에서 유사수신행위가 '자금(금전)의 조달'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가상화폐를 금전으로 볼 수 있는 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검찰이 고민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테라·루나를 금전으로 볼 수 없다면 권씨에게 유사수신행위법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기 혐의 적용을 위해서도 추가적인 입증이 필요하다. 형법에 따르면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해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경우에 성립한다. 따라서 검찰은 권씨에게 테라·루나의 구조적 허점을 알면서도 투자자들을 모집하는 '기망 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입증해야 한다.

    또 기망 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거래소를 통해 거래가 이뤄지는 가상화폐의 특성상 권씨가 재산상의 이득을 취득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도 필요하다. 피해자들이 테라·루나를 매수하면서 지불한 돈은 권씨나 테라폼랩스가 받은 것이 아니라 매도인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죄형법정주의 원리에 따라 형사처벌을 전제로 하고 있는 유사수신행위법상 금전에는 가상화폐가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테라폼랩스가 테라·루나의 구조적 허점에 대해 알고서도 의도적으로 미고지했다는 사실이 입증돼야만 사기죄가 성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정확한 피해액 산정이 어렵다는 점, 권씨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탓에 강제 수사가 어렵다는 점 역시 검찰 수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가상화폐 유사수신 포함 법안 발의...소급 적용은 어려울 듯

    금융계과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가상화폐와 관련한 법과 제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투자자들의 피해를 막고 범죄행위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려면 관련법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3일 "가상자산 거래는 대규모·비대면 거래로 인해 정보 비대칭, 불공정 거래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민간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시장 자율 규제의 확립이 보다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자본시장연구원도 지난달 24일 디지털 자산시장과 관련 정책 세미나를 열고 제2의 루나 사태 발생을 막기 위해 '가상자산 발행인에 대한 공시의무 부과와 상장기준 규정화' 등 관련 입법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가상화폐 등 가상 자산을 받는 행위를 유사수신행위 중 하나로 규정하는 유사수신행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해당 개정안은 '예치한 가상 자산의 전액 또는 이를 초과하는 가상 자산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고 금전 또는 가상 자산을 받는 행위'를 유사수신행위에 포함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의원은 "가상 자산을 이용한 유사수신행위에 대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개정안을 통해 가상 자산 이용자와 거래 행위를 보다 두텁게 보호하고 관리 감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